w. 개미
“야야, 알폰스 취했냐.”
이제 그만 일어나 일어나라고! 에드워드는 테이블에 길게 늘어진 남자의 팔을 연신 흔들었다.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일으켜지나 싶었던 몸은 물에 눌어붙은 휴지 조각처럼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는 수 없이 겨드랑이 사이에 목을 끼워 한쪽 팔을 겨우 들어 올린 에드워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나는 너 못 업어. 너랑 나랑 키 차이를 봐라, 아니 그렇다고 뭐 내가 작다는 건 아니고”
네가 좀 많이 크다 뭐 그런 거지. 변명처럼 작게 덧붙이며 에드워드는 있는 힘껏 알폰스의 몸을 테이블 밖으로 밀어냈다. 그럼에도 꿈쩍 하지 않는 굵직하고 두툼한 상체에 에드워드는 쯧쯧 혀를 찼다. 지금 연락해서 다른 사람들 부르기엔 너무 늦었단 말이야. 좀 있음 가게도 마감이라 바텐더도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어. 너 이거 영업방해다? 네 발로 걸어가기 싫어서 자는 척 하는 거기만 해봐 아주. 연신 투덜대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알폰스도 조금은 움찔하며 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래 어디 변명이라도 해보겠다 이거지?”
작게 입을 달싹이는 모양새에 에드워드는 허리를 숙여 알폰스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형, 혀엉.”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입을 비집고 나온 형이라는 단어에 에드워드는 멈칫하며 알폰스의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네가 많이 취하긴 했나 보라고 중얼거리며.
“또, 또 그렇게 부른다. 진짜 너네 형은 어디다 두고.”
“형, 보고 싶었어. 많이 보고 싶었어.”
몸을 반쯤 일으킨 알폰스는 허리를 굽혀 에드워드의 품 안을 파고들며 연신 아이 같은 고백을 늘어놓았다. 자신을 형이라 칭하며 달아오른 뺨을 부비는 작고 노란 머리통과 코트 깃을 꼭 쥔 손. 이쯤 되니 에드워드는 이 잔뜩 취한 소년이 조금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일찍 철이 들어 어른스럽게 보인다고는 해도 알폰스는 이제 고작 열일곱에 불과했다. 에드워드는 잠을 깨우는 것을 포기하고 의자를 빼내 걸터앉았다.
“너도 참 한결같다.”
알폰스 엘릭은 술에 거하게 취한 날이면 늘 이런 식으로 형을 찾았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존대를 붙여가며 거리를 두던 녀석이 ‘형’을 부르며 칭얼대는걸 보고 기겁했지만 지금은 얼마나 가족 생각이 나면 이럴까 싶어 조금 가엾게 느껴지기도 하고.......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금빛 머리칼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두어 번 슥 쓸어주었다. 결이 고운 금발은 어디 하나 엉킨 곳 없이 부드러웠다.
에드워드는 알폰스 엘릭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워낙 인상 깊어서 잊을 수가 없었지. 맞물린 보도블록 위로 검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늦은 저녁, 에드워드 소유의 사무실을 방문한 깡마른 노교수와 금발의 훤칠한 소년.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후원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는 그들은 변변한 추천서 한 장 없이 빈손이었다. 에드워드 하이드리히는 이런 식의 방문에는 익숙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든 냄새를 맡고 달라붙어 이득을 보려는 작자들이 존재하니까. 빈민구호단체, 민간사업체, 영화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찾아오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이 에드워드를 찾아온 목적은 늘 같았다. 그가 가진 재력, 혹은 이름을 빌려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원해서였지.
에드워드는 그저 반갑지 않은 이 손님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들어주다 보낼 셈이었다. 당장 쫓아내기엔 창문을 울릴 만큼 거센 빗줄기가 신경 쓰였고 오늘만큼은 왠지 자신도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더라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니까.
“어느 분야의 연구지?”
“저희는 우주로 쏘아 올릴 로켓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 이 설계도를 보면.......”
다소 무례해보일 수 있는 에드워드의 반말에도 개의치 않고 교수는 연구의 목적과 그동안 이룬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쇼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그의 목소리를 반주삼아 빗소리를 들었다.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우파에 있는 영화사의 지원 외에 다른 분야엔 썩 관심이 없기도 했고. 확실히 우주에 관한 연구라면 요즘 붐이긴 했지만 자신에겐 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좇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지.......’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었다. 오히려 로켓 연구보단 불안한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무기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게 돈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에드워드 자신은 전쟁에 연관된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건 정의를 찾을 만큼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동생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에드워드가 이런 저런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눈앞의 교수는 제법 준비해온 게 있는지 협탁 위로 양피지로 된 연구계획서를 펼치며 열변을 토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 힘든 열정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호기심이 생기는 건 함께 들어온 일행 쪽이었다. 교수의 흥분어린 목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아까부터 눈앞의 소년은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 방을 나설 때까지도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눈에 띄는 외모였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흰 셔츠에 다소 품이 큰 베이지색 레인코트.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흔치 않은 색감의 밝은 금발에 별을 박은 듯 샛노란 금안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호박처럼 빛이 났다. 에드워드는 앳된 얼굴의 소년에게 홀린 듯 질문을 던졌다.
“자네의 연구 목적은 무엇이지?”
“로켓을 만들어서 집에 돌아갈 생각이에요.”
뒤로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아무리 정리해 들으려 해도 도통 맥락이 없었다. 소년은 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형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로켓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에드워드는 예상치 못한 소년의 대답에 헛웃음을 지었다.
‘기껏해야 우주공학에 대한 학구열이나 어필할 줄 알았는데.’
교수는 난데없이 흘러나온 동행인의 허황된 대답에 애매하게 웃으며 대화를 무마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그 뜬금없는 문장과 대비되는 간절함이 에드워드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릴 때 죽은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소년의 나이쯤 되었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말하는 그의 곧은 눈빛엔 거짓이 없었다. 누구라도 그 눈을 마주한다면 그를 돕고 싶어 했을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로켓 연구를 핑계로 해서라도 이 묘한 분위기를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목적을 지닌 단호한 눈빛과 청아한 목소리는 잊고 있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교수가 제시한 연구비는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에드워드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었다. 자잘하게 엮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이런 방식의 후원은 줄곧 거절해왔지만 이번만은 그러기 힘들 것 같았다.
“좋아.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연구비용 전액을 대지.”
여전히 교수가 아닌 소년의 눈을 마주한 채였다. 앞서 자신의 이름을 알폰스라 소개한 소년은 갑자기 결정된 거액의 후원금에도 크게 기뻐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옆의 교수보다도 담담해 보이는 표정이 에드워드를 신경 쓰이게 했다. 연구를 돕겠다하면 조금이라도 밝은 모습을 보일 줄 알았는데 말이지.
일찍 퇴근한 비서 대신 에드워드는 손수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방의 중앙에 놓인 괘종시계의 시침이 채 한 바퀴를 돌기도 전 단시간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큰 액수를 한 번에 부른 것도 놀라웠지만 거기엔 조건이 걸려 있었다.
[알폰스 엘릭과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을 수 있게 할 것.]
노교수는 그리 까다롭지 않은 제안에 반색하였으나 알폰스만은 미묘한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가져온 자료를 추슬러 방을 나간 후 에드워드는 물기어린 창문 앞으로 가 동그랗게 펴진 우산 두 개가 인도를 따라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간간히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은 보도블록 위에 잘게 고인 웅덩이 위로 연신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먹색 구름이 뒤덮인 하늘은 여전히 개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게 검고 탁했다.
에드워드는 바깥의 낮은 온도로 인해 흐릿하게 김이 낀 유리를 빡빡한 손바닥으로 문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물기가 배어나왔지만 별로 닦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옅어진 창문 위로 투명하게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방금 이 방을 나선 그가 겹쳐 보였다. 그 굳건한 눈빛과 청아하게 울리는 맑은 목소리는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기시감을 안겨주었다.
소년은 죽은 사람을 닮았다. 에드워드가 더 없이 사랑했던.
그렇게 시작된 관계였다. 이제는 단순한 후원인의 관계를 넘어 친구라 이름 붙여도 될 만한 사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비록 그게 에드워드의 일방적인 관심이라 할지라도.
오늘만 해도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연구실 앞을 찾아갔다. 술은 됐으니 오늘은 돌아가라는 알폰스의 거절에도 에드워드의 제안은 끈질기고 집요했다.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알폰스의 노란 뒤통수에 대고 크락션을 빠앙 울리며 그의 보폭에 맞추어 차를 움직였으니까. 결국 포기한 알폰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옆자리에 동승하고 나서야 도로 위의 작은 해프닝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불러내지 않으면 알폰스는 퇴근 후에도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연구만 해대니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그를 주기적으로 집에서 꺼내는 것은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그래도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데 밖에도 좀 나오고 그래야지. 오늘은 주량보다 좀 많이 먹인 것 같긴 하다만.
“야, 알폰스! 이제 그만 일어나지?”
“혀엉.”
“응응, 그래 너네 형.”
“형, 사랑해.”
“.........”
툭툭 의미 없이 알폰스의 볼을 찌르던 에드워드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들어서는 안 될 말을 엿들은 기분이었다. 방금 알폰스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가족 간에 건네는 일반적인 사랑해 와는 달랐다. 그랬다면 에드워드가 이렇게까지 당황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가 뱉은 ‘사랑해‘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에드워드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깊게. 그 말을 대책 없이 제 앞에 던져놓고서 탁자 위로 스르르 엎어진 알폰스의 어깨는 축 쳐진 채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 테이블밖에 남지 않은 가게의 마지막 손님, 에드워드와 알폰스가 있는 안쪽 자리를 제외하고는 가게 대부분의 불이 꺼진 채였다. 에드워드는 어른거리는 술집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 물결처럼 흔들리는 알폰스의 등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역시 네 말대로 오늘 술을 마시지 말걸 그랬나보다.’
에드워드는 가게의 마감을 알리러 다가온 바텐더에게 지폐를 한 움큼 꺼내 들려주었다. 일주일은 영업을 쉬어도 될 만큼의 충분한 액수였다.
“키 줘. 내가 문 닫고 갈게.”
“저기, 손님 그래도 열쇠를 드리는 건.......”
“금액이 부족해? 아니면 아예 문 닫게 해줘?”
잘생긴 금발의 미청년을 끼고 다니는 성격 나쁜 도련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바텐더는 조금 당황하는가 싶더니 별 말 없이 조용히 키를 넘겨주고 짐을 챙겨 나갔다. 더 문제 삼다가는 경찰을 부를만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에드워드는 오늘도 일찍 집에 들어가긴 그른 거 같다고 생각하며 주머니 속의 키를 만지작거렸다.
***
-꿈을 꾸었다.
형이 죽었다. 형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문을 넘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넘어온 세계에서 나는 나를 위한 로켓을 만들었다. 문을 다시 열어 그곳으로 로켓을 날린다면 어쩌면 너머의 세상으로 날아가 다시금 형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아니, 꼭 그렇게 될 거야.
형은 그 어떤 세계든, 반드시 나를 찾아내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테니.
“야 야아, 일어나봐. 왜 그래.”
에드워드는 사색이 되어 침대 위의 알폰스를 깨웠다. 어젯밤 얼추 술에서 깬 알폰스를 일으켜 들쳐 업다시피 집으로 데려왔다. 온 몸이 땀에 젖은 그를 힘겹게 침대 위로 던져 올린 후 허해진 기력도 보충할 겸 술이나 꺼내 마시려던 참이었다.
알폰스가 형에게 남긴 사랑한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찾고 있다는 그 형이란 사람한테 다른 사람들은 모를 비밀스러운 마음이라도 품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제게 그다지도 살갑지 않게 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언젠가 알폰스가 지나가는 말로 에드워드 씨는 우리 형을 닮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말을 곱씹자 에드워드는 괜히 신경 쓰이고 복잡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졌다. 여태껏 표현력의 부족이라 믿었던 알폰스의 차갑고 딱딱한 언행들이 정말 자신이 불편해서 그랬던 거라면?
‘심란한 마음엔 또 알콜만한 해답이 없지.......’
에드워드는 머리를 벅벅 긁다 시선을 탁자 밑으로 내렸다. 이전에 알폰스의 침대 밑에 몰래 넣어두었던 작은 술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허리를 굽혀 손을 뻗자 뿌듯하고 견고한 유리의 질감이 느껴졌다. 1887년산 코냑, 나쁘지 않네.
“형, 형!!”
“야, 너네 형 부를 정신 있음 일어나라니까!”
어제에 이어 또 형을 찾는 애타는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침대에 누운 알폰스의 몸을 흔들었다. 어제와는 달리 몇 번의 흔들림 만에 알폰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악몽이라도 꾸었는지 얼굴과 몸에 온통 식은땀이 흥건했다. 젖어서 달라붙은 셔츠의 단추를 몇 개 끌러내 느슨하게 해주자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게 느껴졌다. 약간 진정이 된 듯 보이는 알폰스는 침대 맡에 앉은 에드워드를 인식하자마자 되물었다.
“.......에드워드 씨는 집이 없어요?”
“어, 내가 여기 오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왜 그래 각박하게. 그리고 어제 술집에서부터 집까지는 잘도 너 혼자 왔겠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데려다 준건 고마워요.”
일단 나와. 너나 나나 오늘 아침 해먹고 나갈 정신은 아닐 거 같아서 아까 오면서 샌드위치 사왔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평소와 같이 태연히 말했지만 에드워드 역시 그가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당장 침대에서 일으켜 방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알폰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넥타이 이리 줘. 너 어제 술집에서 나오다 벽에 손을 부딪쳐서 혼자 묶기엔 불편할거야.”
칠칠맞게 술에 취해 허우적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너 나 없으면 어떻게 지내려고 그래? 내가 민첩하게 샌드위치라도 안 사왔으면 또 빈속으로 나갔을걸. 에드워드가 웃으면서 건네는 농담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알폰스는 들고 있던 넥타이를 슥 앞으로 내밀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알폰스는 밖에 나갈 때 정장을 꼬박꼬박 챙겨 입고 가는 편이었다. 언제 어느 때에 문 너머로 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요한 물건만을 소탈하게 챙긴 작은 여행가방도 평소에 늘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늘 그것이 조금은 못마땅했다. 제겐 현실인 이곳에서 그는 늘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으니까. 알폰스의 목에 타이를 두르며 매듭을 지어주던 에드워드가 넌지시 물었다.
“알폰스. 네 형이란 사람 말이야. 어땠어?”
형이란 얘기에 잠시 숨을 삼키는가 싶던 알폰스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에드워드 씨랑 비슷해요. 저와 같은 색의 굽이치는 금발에 강인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죠. 성격이 조금 급하고 욱하는 다혈질에 흥미 있는 일에만 관심을 보였어요. 그래서 귀찮은 일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늘 즐거웠어요.”
“나랑 그렇게 많이 닮았어? 너 술 많이 마시면 만날 나랑 형이랑 헷갈려 하니까 신경 쓰여.”
“글쎄요, 당신과 외관이 크게 다른 게 있다면 눈 색 정도일까.”
“눈 색?”
“에드워드 씨의 눈이 바다 같은 푸른빛이라면 형은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아침 하늘같은 빛이었어요. 사람들은 제 눈이 형과 같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보다는 형 쪽이 훨씬 더 반짝거리곤 했으니까요.”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알폰스는 늘 꿈을 꾸는 사람 같았다.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형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지만 그의 형 못지않게 알폰스 또한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말은 생각보다 곱지 않게 튀어나갔지만.
“형이랑 굉장히 사이 좋았나봐. 보통은 형제간에 그렇게 좋게 이야기 안 해줄 텐데.”
다소 이죽거리는 듯한 에드워드의 놀림에도 알폰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은 저를 끔찍하게 아꼈어요.”
“야, 알폰스. 그건 나도..........”
그것도 자신과 별다르지 않다고 대꾸하려던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무겁게 내려앉은 표정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한다 해도 자신은 그의 형을 이길 수 없었다. 이미 알폰스의 마음부터가 이곳을 떠나 있는 걸. 검은 천으로 덧댄 가죽장갑을 매만지며 한참 말을 고르던 에드워드는 알폰스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문 앞에 걸려 있던 얇은 코트를 옆구리에 낀 채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연구소로 갈 거면 데려다 줄게. 나와. 어차피 나도 가는 길이니까.”
에드워드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알폰스의 연구실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그럼에도 가는 길이니 동행하자는 핑계로 에드워드는 매번 그를 데려다주었다. 그럴 때면 정말 그의 친동생이라도 된 기분이라 알폰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 사람은 내게서 자신의 동생이라도 보는 걸까. 내가 그에게서 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평소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해 말한 적이 있었다. 에드워드가 아직 글자도 쓰지 못할 만큼 어렸을 때, 동생과 어머니는 오페라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감기로 밤새 앓느라 가족들을 따라가지 못한 에드워드만이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알폰스, 이건 추측이지만 말이야. 아마도 두 사람은 살해당했을 거라 생각해. 사람을 칠까 무서워 운전이라고는 하지도 못했던 엄마가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는 것부터 이상했거든. 내가 의혹을 제기했을 때 우리 집의 가정교사였던 윈리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어. 난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사고 이후 순식간에 치러진 장례식까지, 감춰야할 무언가를 급하게 덮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어. 조금 더 자란 내게 큰 형은 그 날의 사인이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어. 그날 밤 집을 나서면서 엄마는 내게 감기가 다 나으면 우유로 끓인 스튜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거든. 내가 경시청의 자료에 손댈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그 사건에 관해 다시 찾아봤지만 관련 기록은 모두 말소되어 있었어. 윈리 록벨은 그걸 위해 변호사까지 되었는데 말이야.
-짚이는 사람은 없나요? 심증이라도 있다면 수사를........
-아버지가 그냥 덮은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범인을 알고 있지만 잡을 수가 없었던 거지. 형들과 나는 어머니가 달라. 원치 않게 생긴 가족들과 나눠 갖게 될 유산이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정작 우리는 그 돈에 관심조차 없었지만.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알폰스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에드워드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널 신경 쓰게 하려던 건 아냐. 네 얘기를 들려줬으니 나도 그냥 내 얘기를 해준 것뿐이지.
그 씁쓸한 웃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에드워드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도 그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굳이 본가와 멀리 떨어진 이 도시의 대학에 교환학생을 신청한 사실도 전부.
그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알폰스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워드는 잘게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대를 돌렸다. 조금이라도 앞의 차가 망설인다 싶음 경음기부터 빡 누르고 보는 습관은 썩 좋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에드워드는 꽤 운전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 왔어. 내려.”
“고마워요.”
안전벨트를 풀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알폰스의 눈앞으로 쑥하고 멀끔한 초대장이 내밀어졌다. 고급 소재의 종이에 금빛의 밀랍인장이 찍힌 정교한 것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격식 있는 파티에서나 보냈을 법한 모양새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는 파티를 즐기지 않았다.
“이건 또 뭐에요?”
“일주일 후에 둘째 형의 약혼식이 있어. 같이 갈래? 싫으면 거절해도 돼. 거절 못하게 할 거지만.”
“시간 봐서요.”
“야아, 한 번에 대답해 주는 법이 없어.”
“오늘도 끝나고 데리러 오실 생각이라면 그만 두시구요.”
“아쉽지만 오늘은 아냐. 록벨을 만나기로 했거든.”
이따 내가 보고 싶어져도 잘 참아야 한다? 에드워드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알폰스의 코트 앞주머니에 초대장을 끼워 넣고 톡톡 두들겼다. 난 너랑 가고 싶은 거라니까. 알겠지 알폰스? 답지 않게 두 번이나 하는 부탁이 어지간히 혼자 가기 싫은 듯 했다. 잠시나마 굳어있던 에드워드의 표정을 떠올리며 알폰스는 바로 간다고 대답할걸 그랬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에드워드는 건물 외벽에 빙 둘러 새겨진 성인들의 부조가 인상적인 시내의 카페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고 저택의 일부를 개조해 운영하고 있는 이 공간은 메뉴의 가격대가 꽤 높은 편이었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특히 색색의 유리를 조각조각 이어붙인 화려한 모자이크 창과 천장의 여백 가득 채운 다소 조잡하다 느껴질 만큼 정교하고 장식적인 샹들리에는 에드워드의 취향과 깊게 맞물려 있었다. 이곳의 높고 위압적인 천장은 우아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 중요한 손님들과의 만남의 자리로도 손색이 없었다. 더군다나 솜씨 있게 꾸며진 정원과 맞닿아있는 야외 테라스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여기서 보자는 약속을 잡았겠지.’
또각또각, 굳이 선명한 굽 소리가 아니더라도 에드워드는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굽이치는 밝은 금발로 윈리 록벨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깨부터 무릎까지 딱 맞아 떨어지는 네이비색 정장을 멀끔히 차려입은 그는 런던 시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변호사답게 고고한 태도였다. 독일까지는 다소 긴 여행이었을 텐데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 에드워드는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이런 부분에선 인간미가 없었다.
“윈리, 왜 갑자기 불러낸 거야. 재산 상속건 아니면 귀찮게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툴툴거리며 불만을 쏟아내는 에드워드를 보고도 윈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데 분위기 망치지 말고 좀 웃지 그러냐며 의자를 뺀 윈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에드워드의 앞으로 칼같이 정리된 서류철을 내밀었다.
“돈이 너무 새더라고. 영화 후원이라면 지금 우파에 지원하고 있는 걸로도 충분한데. 내역을 확인해보니 우주 관련 연구에 백만 파운드나 썼더라. 네가 언제부터 이쪽에 관심이 있었다고.”
“또 쓸데없이 회계에도 관여했나보네. 변호사면 그 일만 열심히 하면 안 될까?”
“뭐 어때 에드. 요즘은 멀티태스킹이 대세잖아. 그리고 나 말고 너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연구 후원 일은 별 거 아냐. 그냥 로켓 연구가 앞으로 좀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 돈 되는 일에 투자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잖아. 조금만 더 있음 난 빈털터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니지. 귀찮은 일이라면 질색인 네가 겨우 돈으로 움직일 리 없잖아. 그보다 요즘 같이 다닌다는 금발 있지. 그 쪽이 정답 아냐?”
윈리의 정보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냥 솔직히 실토하기로 했다. 여기서 다른 변명을 해봤자 어떤 짓궂은 질문을 던질지 몰랐다. 알폰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할 필욘 없겠지. 그저 그의 수려한 외모에 이끌려 한 선택이었다고 둘러대도 윈리라면 종잡을 수 없는 도련님의 가벼운 변덕쯤으로 받아들여줄 것이었다.
“뭐, 우주 연구에 관심이 생겨 그랬단 건, 반은 맞지만 반쯤은 핑계고 처음엔 별 생각 없었어. 어느 날 찾아온 밝고 찬란한 금발의 우수한 인재라니 매력적이잖아? 알폰스는 일단 잘생겼고 데리고 다니면 다들 쳐다보니까 기분이 좋기도 하고. 요컨대, 일종의 과시 심리지.”
“정말 남자들의 허영심이란.”
“생각해봐 윈리, 내가 이런 재미라도 없음 어떻게 살겠어.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농담 같지도 않겠다며 에드워드는 소리 내어 웃었지만 윈리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재떨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툭툭 소리 내어 담뱃재를 털던 윈리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에드, 요즘도 따라 붙는 사람들 있어?”
“더 이상 신경 쓰이지도 않아. 이제 아버지 돌아가심 다 끝인 걸. 큰 형이 이름뿐인 재단을 설립해 대부분의 재산을 그쪽으로 빼돌린 거 같더라고. 거기다 우리 영감은 이제 병세가 완연하지. 죽을 때가 되니까 그제야 내가 생각나는지 계속 집에 들어오라는데.......”
그 난리를 치고 나왔는데 내가 돌아가겠냐고. 에드워드는 목을 삐딱하게 좌우로 돌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사느니 잘생긴 금발의 미청년과 놀아나는 편이 훨씬 즐겁지 않겠냐는 거지.”
커피를 휘젓던 티스푼을 허공에 빙빙 돌리며 동의를 구하자 윈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한테 그런 취미가 있는지는 내가 미처 몰랐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난 그냥 그 녀석이 맛있는 걸 먹고 기뻐하고 평범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야. 안 그럴 거 같은 애가 영 인생 재미없게 살더라고.”
“에드, 어설픈 변명이 더 수상한 관계로 보이게 하는 거 알지?”
“뭔 말을 못하겠네. 이해 못함 됐어. 그냥 그렇다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윈리가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
“그 알폰스라는 남자, 어지간히 절륜한가봐? 꽤 같이 붙어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빠져있는 줄은 몰랐네. 너 원래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더럽게도 관심 없잖아.”
“야 너는 무슨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윈리의 말에 먹던 커피를 도로 뱉어낼 만큼 놀라 컥컥대던 에드워드는 알폰스와 자신이 그런 관계가 아니라며 해명했다. 머릿속에 든 게 그런 것뿐이냐며 질색하는 에드워드에게 윈리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에드.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더러운 속내 비치는 작자들이 워낙에 많아야지. 물론 네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람은 늘 만약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는 거 알지? 혹시라도 네가 부당하게 그를 성적으로 착취한다면 나 윈리 록벨은 언제든 그의 변호를 맡아할 의향이 있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정도로 단호한 윈리의 태도에 자신이 만의 하나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가싶어 우물쭈물하던 에드워드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혹시 너도 그런 일 있음 말해. 내가 어떻게든........”
“됐어, 에드. 다 내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니까 너는 네 일이나 잘해. 그나저나 다시는 엮이기도 싫은 너희 집안 부탁으로 내가 뭘 들고 왔게? 이제 와서 말하지만 지금 네 코가 석자야.”
윈리는 에드워드의 앞에 붉은 실끈으로 묶인 큼지막한 갈색 봉투를 내밀었다. 매듭을 끌러내 열어보니 정부 고위층 자제를 대상으로 군에 입대할 자원자를 우선적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서류였다. 곧 있을 징병에 대비해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명분이 있어야하기 때문이겠지. 전쟁을 앞둔 나라의 뻔한 패턴이라는 걸 에드워드 역시 모르지 않았다.
“분명 네 그 잘난 형들은 집안의 명예를 들먹이며 너에게 최전선으로 지원하라 하겠지. 요구에 절대로 응해주지 마.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 네 가문을 위해 네가 희생해야할 이유 전혀 없으니까. 딱 지금처럼만 살아. 눈에 띄지 말고 욕심 없이. 내키는 대로 적당히 놀면서.”
“물론이지, 윈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순한 후원 얘기였다면 서면으로 보냈겠지.
“에드워드, 나는 진심으로 너를 아껴. 너는 그걸 알아야 해.”
나도 알고 있어. 에드워드는 록벨의 격양된 표정을 마주하고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깔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걱정할 일들은 없을 거야. 약속 할게. 에드워드의 대답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윈리는 영 개운치 못한 얼굴이었다.
“시간도 어중간한데 밥이나 먹고 갈래?”
“아니, 바빠. 똑똑한 척 하지만 실상 제일 못미더운 네가 허튼 결정 못 내리게 말리러 온 거고 볼일 끝났으니 이제 가 봐야지.”
겨우 충고를 하러 온 것 치고는 너무 먼 거리가 아니냐며 에드워드는 미소 지었다. 윈리는 아닌 척해도 에드워드를 제일 생각해주는 사람이었다. 에드워드의 가정교사였던 그녀는 부모님과 동생이 죽어 홀로 남겨진 에드워드를 유일하게 형제들의 압박에서 보호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 자신도 아직 어린 학생에 불과했으면서. 이젠 제법 어엿한 변호사가 되어 런던에 사무실까지 개업한 윈리는 말은 다소 거칠게 할지 몰라도, 아무런 연고 없는 에드워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에드워드는 기차역까지 윈리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다쿠아즈와 마카롱을 샀다. 알폰스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알폰스는 평소에 썩 단 것을 즐기지 않았지만 이 프랑스식 디저트만큼은 집에 놔두면 곧잘 집어먹었다.
‘간식도 있으니 오늘 저녁으로는 알폰스가 좋아하는 우유가 들어간 스튜라도 해야겠네.’
에드워드는 낮은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면 매번 부르는 노래였다. 자주 들리는 멜로디에 알폰스도 익숙해졌는지 가끔 에드워드의 노랫소리 위에 화음을 넣어 따라 부르기도 했다.
“에드워드 씨는 참 그 노래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질려? 그래도 관심 보여주니까 좋은 걸.”
“아뇨, 그냥 그 노래는 좀 익숙해요.”
“엄마 고향의 민요 같은 거랬어. 나도 어렸을 때 들은 거라 가사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 흐릿한 기억에 의존해 멜로디만 겨우 흥얼거릴 정도지.”
그 이후로 알폰스는 혼자 방에서 서류철을 정리할 때면 작게 흥얼거리며 예의 그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굳이 아는 척을 하진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사소한 변화가 좋았다. 조금씩 물들어간다는 건 이런 거겠지. 에드워드의 취향, 노래, 식습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것들. 알폰스는 자기 나름대로 에드워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까지 이미 그가 들어와 있다는 건 미처 모르는 것 같았다.
“알폰스, 요리 다 됐어. 나와.”
오랜만에 기분을 좀 내보고 싶었다며 에드워드는 집에서 가져온 은촛대에 불을 붙여 장식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바오르 대성당의 성찬식에 쓰였다는 7구 촛대는 당장 박물관에 전시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유서 깊은 물건으로, 간소한 식탁과 투박한 테이블보에 어울리지 않는 무척이나 화려한 것이었다. 미색 도자에 단정하게 꽂아진 흐드러진 생화, 새로 꺼낸 새하얀 냅킨까지 그 날의 식탁은 특별했다.
“꽃도 있고, 은촛대에 제가 좋아하는 스튜까지. 오늘 무슨 일 있어요?”
평범한 저녁식사치곤 조금 과하지 않느냐며 묻던 알폰스는 이내 다른 의문들을 접어두고 잘 먹겠다며 스푼을 들어올렸다. 에드워드가 마련한 것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엔 염치없다는 생각쯤은 하고 살고 있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그로 인해 굴러가고 있었다. 에드워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집세, 관리비, 식비 등 금전적인 부분에서부터 직접 차려먹을 수 있는 간단한 식사까지도. 에드워드는 알폰스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을 자신이 직접 해주려고 했다. 처음엔 귀찮기만 했던 그런 관심에 알폰스는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정을 준다는 건 무서웠다. 그래서 주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을 그와 공유하며 묻어둔다. 형이 없어진 자리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또 다른 빈자리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런 날도 있어야지.”
“별 일 없음 다행이고요.”
“알폰스, 그리고 너 말이야 처음엔 너 좀 귀염성 있는 스타일이었는데 점점 말수도 줄어들고 딱딱해지고 있어. 나도 네게 이유가 있다는 것쯤은 알아. 돌아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초조하고 답답하겠지.”
에드워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스튜를 식힐 겸 스푼으로 휘휘 젓던 알폰스는 고개를 들어 에드워드와 눈을 맞췄다.
“네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없어.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네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끔 연구비용도 대고 있고 살 곳도 마련해줬어. 삼시 세끼를 모두 챙기는 양질의 식사에, 죽지 않게 매일 방문서비스까지 해주잖아. 요약하자면 과한 호의에 지나친 친절이지. 너 이런 후원자 본 적 있어?
“확실히 그런 사람 없긴 하죠.”
“그러니까 좀 웃어. 다른 건 안 바라니까.”
알폰스는 후에 그 날의 식사를 즐거웠다고 기억했다.
에드워드의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누그러진 태도의 알폰스는 스튜를 먹는 중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에드워드의 실없는 농담을 받아주기도 했다. 사실 알폰스는 형인 에드워드를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재회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에드워드를 처음 보았을 때 다시는 마주치고 싶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에드워드는 자신과 처음 만난 날을 후원을 받기 위해 찾아갔던 날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 전에 알폰스는 에드워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해 처음 맞았던 크리스마스. 아메스트리스에서는 없던 생소한 기념일이라 알폰스에겐 이 모두의 축제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잔뜩 들떠 저마다 연말 계획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 그들을 뒤로하고 혼자 거리로 나왔었다. 나무마다 걸려 빛을 내는 트리장식, 불 켜진 가게마다 전시된 선물들, 반짝이게 매달아놓은 크리스마스 문구. 사람들은 저마다 정성껏 포장된 꾸러미를 품에 안은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얼굴들은 행복해보였다. 알폰스는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공기에 맨 손을 호호 불었다. 연구소 안은 따듯했지만 지금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복장을 한 소녀가 알폰스의 곁에 다가와 캔디를 내밀었다. 인근 교회에서 하는 행사인 듯 했다. 인사를 바라듯 고개를 까딱이는 아이에게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인사해주었다. 생긋 웃으며 총총 뒤돌아가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알폰스는 손바닥 위에 놓여진 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껍질을 까 입에 넣었다. 정제되지 않은 박하향이 강하게 나는 싸구려였지만 천천히 혀 위로 굴리자 은은한 단맛이 퍼졌다. 그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 형, 보고 싶다.’
이럴 때 성냥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연구실 버커니어 씨의 어린 아들은 종종 연구실에 놀러오곤 했는데 알폰스만 보면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조교를 맡고 있는 셰스카가 알폰스 형아는 바쁘니 대신 읽어주겠다고 말해도 저 형이 아니면 안 된다고 우기는 통에 알폰스는 쉬는 시간이면 간간히 짬을 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이렇게 추운 날 밖에 혼자 앉아 있으니 문득 어제 읽어줬던 동화의 내용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옛날, 옛날에, 성냥, 팔이,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 뒤에 부터는 알폰스 형아가 읽어주면 돼!’
작은 손으로 글자를 짚으며 또박또박 읽는 아이를 보고 미소 지었었지. 알폰스는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무적으로 대하려 노력했지만 유독 어린 아이들에게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건 형과 자신의 유년시절이 떠올라서이기도 했다. 충분히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이 늘 아쉬웠던 형제는 그 공허감과 결핍을 상대방의 존재로 채웠다. 알폰스에게는 형이 곧 친구이자 엄마였고 돌아오지 않는 아빠였다. 그건 아마 형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서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서로가 서로의 절대적인 전부였다. 그리고 그랬던 형은 지금 자신의 곁에 없다.
성냥을 그을 때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매혹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비록 결말은 비극적이었지만 원하는 것의 환상이라도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건 정말로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불 꺼진 분수대 앞을 홀로 지나가고 있던 그 남자를 보았다.
에드워드 하이드리히.
광장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만이 눈에 들어왔다. 품이 큰 갈색 코트 안에 작은 몸을 끼워 넣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금발의 소년. 알폰스에게 형과 닮은 사람을 단박에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순간적인 반가움에 ‘형’이라고 소리쳐 이름을 부를 뻔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이전 세계의 사람들과 외관은 닮았지만 살아온 인생도 가치관도 전혀 달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막연하게 형을 닮은 존재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를 직접 마주한다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형과 자신이 공유한 과거를 알지 못할 것이었다. 진짜 형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두고도 아쉬움을 안고 돌아 나왔다.
그 날의 마주침 이후, 알폰스는 수소문 끝에 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유명한 재력가의 셋째 아들로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명석한 능력을 인정받아 베를린에 위치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와는 앞으로도 영영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부하는 분야도 거주지도 다른 것을 확인했으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그와 함께 살아간다면 이곳은 제게 견딜 수 없는 지옥이 될 테니.
에드워드와 가까워지는 것은 예정에 없는 일이었다.
사실 문을 넘어오기 전 알폰스는 형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만큼 좋지 못한 기억이라 묻어두고 있었지만.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며 밀어내던 형의 눈빛. 그 눈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너머의 세계의 형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결이 달랐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갖게 되는 일말의 희망은 알폰스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이곳의 형은 나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된 희망. 그리고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그 바람이 실체화 되었을 때,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고 이후에는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조금은 기쁘다고 느낀 자신이 싫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알폰스 엘릭은 에드워드 하이드리히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작 에드워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알폰스를 향한 애정이 그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묻어났다.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작은 신호, 신호들.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너머의 세상에서 형을 대했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여 알폰스는 마음의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형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사랑한 대상은 에드워드 하이드리히가 아닌 에드워드 엘릭이었으니까.
나는 형과 함께 쌓아온 시간을 사랑했던 거야. 당신이 아니라.
그날 밤은 일찍 잠이 들었다. 제발 집에 돌아가서 자라는 알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는 기어이 힘으로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알폰스가 살고 있는 집은 침대가 한 개 뿐이었다. 따라서 그가 자고 가는 날이면 두 사람은 같은 침대를 쓸 수밖에 없었고 에드워드가 눈을 감고 누워있을 때면 형과 분간이 가지 않았기에 알폰스는 불편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굳게 감긴 눈 위로 드리운 옅은 속눈썹을 보면 알폰스의 심장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뜰 때, 깜박이는 눈 속의 새파란 눈동자는 자신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음 너도 조금은 설레나?”
장난스럽게 말하며 이불을 끌어당긴 에드워드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알폰스는 그 미소가 거대한 돌덩이라도 된 듯, 마음 한 구석의 이물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에게 흔들릴 때면 형에게 가졌던 자신의 마음이 거짓되게 느껴졌다. 단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형과 분간 가지 않는 에드워드 존재의 애매함은 알폰스를 미치게 했다. 그래서 그와 더 선을 그으려 하는 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감정에 휩쓸려 혼란을 느낄 때마다 알폰스는 더더욱 에드워드에게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대했다. 자신의 밀어내는 행동들을 장난으로 받아치고 있지만 에드워드가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알폰스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떠나야 하는 자신이 그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됐다. 최대한 상처를 덜 받고 싶었고 상처를 덜 주고 싶었다. 그가 알지 못하고 끝내는 전해지지 못할 진심이라 할지라도. 알폰스는 에드워드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를 품에 안아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형.”
늘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다. 깊게 잠들었는지 에드워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새근거리는 그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알폰스는 이불 속을 더듬어 에드워드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얼굴이에요.’
형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계로 가기 위해 나는 어쩌면 형일지도 모르는 당신을 두고 간다. 형을 닮은 그와 이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에드워드 엘릭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에드워드 하이드리히는 나를 사랑한다. 그 두 가지 명제를 두고 알폰스는 한 가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고민의 갈래 끝에 자신이 택한 것은 형이었다. 알폰스는 자고 있는 에드워드의 손을 가볍게 잡아 깍지를 꼈다. 맞닿은 손에서 일정한 박자로 뛰는 맥박의 고동이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잘 자, 형. 잘 자요. 에드워드 씨. 고르게 위 아래로 흔들리는 그의 가슴팍을 바라보다 알폰스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제가, 제가 다 잘못했어요....... 형들, 형들이 날 죽일 거야. 무서워. 너무 무서워....... “
알폰스는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그 뒤로 이어지는 흐느낌에 급히 눈을 떴다.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래요? 에드워드의 상태에 당황해 다급하게 물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것도 정신없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몸을 돌려세워 마주한 물빛 눈에는 흥건한 눈물이 가득했다. 알폰스는 늘 당당하기만 했던 에드워드의 무너지는 모습에 당황했다. 눈물범벅된 얼굴로 연신 잘못을 비는 에드워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 같았다. 침대 시트를 짚은 손에서는 습기가 묻어났다. 이불은 밤새 그가 흘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소리를 듣고 깰 때까지 에드워드는 계속 악몽에 시달린 듯 보였다. 그 날 엄마와 함께 나갔어야 했다고 울며 후회하는 그는 전혀 자라지 않은 그때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여전히 과거에 갇혀있는 작고 가엾고 안쓰러운 사람.
“괜찮아요. 에드워드 씨. 나는 여기에 있어요.”
사람을 달래본 지가 오래되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발작이라도 하듯 바들대며 떠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한 품에 그러안았다.
자신의 형, 에드워드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의 무게를 늘 가지고 있었다. 차마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깊은 밤이 찾아오면 온기를 지니지 못한 차가운 몸일지라도 자신은 형을 끌어안아 달래곤 했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다행인 건 지금의 자신에겐 그때와 다르게 따듯하게 안아줄 수 있는 부드러운 몸이 있다는 것이었다. 알폰스는 에드워드의 차갑게 굳은 뺨 위로 자신의 손을 얹었다.
“알폰스, 사랑해. 나 좀 사랑해줘. 제발 나를 좀 봐줘..........”
어린 날의 그는 이제 다시 열여덟의 에드워드가 되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알폰스는 그에 대한 해답은 줄 수 없었다.
“너는 내 사랑이 진심 같지 않아? 난 여기에 있어. 줄곧 그래왔어. 나는 네 꿈속의 존재가 아냐.”
“알고 있어요. 당신이 아니라 내가 당신 꿈속의 존재라 그래요.”
그가 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모진 답을 뱉는다. 알폰스는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환영이라도 보고 있는 듯 악몽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그에게 하는 말은 곧 알폰스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존재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이기심이기도 했다.
“아, 엄마. 엄마. 나 아프지 않아요. 같이 갈래요. 여긴 너무 무서워요.”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 그는 더 이상 혼자 있기 싫다며 이곳은 외롭다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가 혼자 지키는 밤은 늘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알폰스는 에드워드가 유독 혼자 있는 밤의 어둠을 무서워했음을 기억했다.
‘형을 닮은 얼굴로 울지 마.‘
그의 말라버린 눈물 자국을 떨리는 손으로 지우며 알폰스 역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역시 형이 아니다. 형과는 전혀 다른 그의 유년기와, 공유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 에드워드와 자신은 역시 만나서는 안 되었다. 알폰스는 모든 것이 제 잘못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문을 넘어왔기 때문에 그는 만들지 않아도 될 기억과 상처를 안고 아파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도 될 수 없는 관계다.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품에 안아 도닥였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위로는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도 이어지는 눈물 섞인 절박한 고백과 알 수 없는 대상에게 구하는 몇 번의 용서. 몇 시간 새 목이 쉴 정도로 심하게 발작하며 몸을 떨던 에드워드는 동이 틀 때가 되어야 겨우 조용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에드워드는 머리가 끊어질 듯한 두통을 호소하며 일어났고 알폰스는 간밤의 일을 모른척해 주었다. 그 역시 전날의 소란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
“그렇게 가기 싫음 안가면 되지 않아요?”
운전하는 내내 연신 다리를 떨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는 에드워드를 보며 알폰스는 집에서 챙겨온 손수건을 내밀었다.
“말이 쉽지. 차라리 적당히 맞춰주는 편이 나아.”
알폰스가 건넨 손수건을 가져가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에드워드는 작게 욕을 뱉었다. 오늘 입은 수트는 알폰스가 지금껏 보아온 에드워드의 착장 중 가장 단정하면서도 화려했다. 평소에 편한 옷만 즐겨 입는 탓에 에드워드는 늘 집에서 가벼운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옅은 광택이 도는 재색 자켓에 다리 라인이 유연하게 드러나는 같은 색의 정장 바지를 입고 나왔다. 에드워드는 예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지만 은근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했다. 약혼식에 같이 갈 수 는 있겠지만 격식에 맞는 옷이 없어 대충 입고 가겠다 말한 알폰스에게 에드워드는 꼭 맞는 정장도 한 벌 맞춰 주었다. 에드워드가 착용한 것보다는 조금 밝은 색의 세미 수트, 직각으로 굳게 떨어지는 섬세한 재단선과 잘록하게 잡아진 허리라인은 알폰스의 빛나는 외모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리 와.”
에드워드는 두리번거리는 알폰스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선상 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창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야외에서 약혼식을 하고 싶다는 피앙세의 요청에 따라 파티의 장소는 선착장 근처의 크루즈 위에서 이루어졌다. 바닥에는 붉은 빛의 부드러운 모포가 깔렸고 색색의 리본으로 묶은 생화다발이 벽의 기둥마다 장식되었다. 얇게 나부끼는 새하얀 실크 캐노피와 수제 레이스로 장식된 식탁보는 배경인 새파란 하늘과 제법 잘 어우러졌다. 마술피리를 주제로 꾸민 화려한 파티에 특별히 섭외된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서곡을 경쾌한 장조로 변주하여 연주했다. 자색 조끼를 차려입고 검은 리본을 단 웨이터들은 정신없이 술잔과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알폰스를 대동한 채 그 사이를 여유롭게 헤치고 나가 그와 비슷한 금발의 남자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에드워드! 바빠서 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용케 참석해주었구나.”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꽤 반가운 기색으로 에드워드를 맞이한 장년의 남자는 알폰스에게 시선이 닿자 가벼운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옆의 신사 분은?”
“알폰스 엘릭. 알폰스, 이쪽은 우리 큰 형.”
부연 설명 없이 이름만 덩그러니 던져놓은 에드워드를 본받아 알폰스 역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에드워드에게 들은 게 있어 그가 좋게 보이진 않았으니 최소한의 예의만 차릴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참석이 힘드시다 하셔서 따로 뵙고 왔다. 에드워드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시더구나. 이제 돌아가서 용서를 구할 때도 되지 않았니?”
“글쎄.......안 그래도 조만간 보러갈 생각이었어.”
“그래, 잘 생각했다. 슬슬 철 들 때가 되었지 너도.”
에드워드의 큰 형이란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에드워드의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팔이 닿자 에드워드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는 것을 보고 알폰스는 반대쪽 팔을 잡아끌어 에드워드를 제 옆에 서게 했다.
“이거 질투가 많은 친구군 그래.”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웨이터에게 손짓해 알폰스의 앞에 술잔을 가져다주었다. 말린 과일을 띄워 장식한 샹그리아였다. 알폰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굳이 손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의상 잔을 받아 가볍게 부딪히긴 했지만 마시지 않고 옆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안색은 파티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몹시 어두워져 있었다.
“이게 누구야. 에드워드! 우리 막내 아니야.”
양 팔을 벌리고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자는 에드워드의 둘째 형인 듯 했다. 이 파티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행사의 기쁨에 음주가 조금 지나쳤는지 살짝 고양된 상태로 입에선 미약한 술 냄새마저 풍겼다. 작은 크리스탈 조각으로 치장된 실크 소매는 그의 팔 아래서 경망스럽게 흔들렸다. 누구보다도 반갑지 않은 상대를 마주하자 에드워드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인상을 찌푸렸다.
“안녕. 재수 없는 얼굴은 여전하네.”
“말본새 하고는. 이런 기쁜 날을 망칠 일이 있나. 도대체 누가 네게 초대장을 보냈지?”
“멍청하긴. 사람을 시켜 직접 보냈으면서 그새 잊은 거야? 아버지가 온다는 말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나온 거야. 나도 여기 오고 싶지 않았어.”
멍청하다는 말에 눈썹을 씰룩이던 그는 고개를 숙여 에드워드와 눈을 맞추고 고압적인 자세로 윽박질렀다.
“그래 네가 요즘 유명하더라. 내 귀까지 들려올 정도면 말 다했지. 집구석이 싫다고 박차고 나갔음 적어도 하이드리히 가의 이름에 먹칠은 하진 말아야하는 거 아닌가?”
“나는 아무것도 안했어.”
“아무것도 안하긴. 중요한 자리에서도 이렇게 보란 듯이 남창을 끼고 다니니 남색에 미쳐 가계에 구멍을 냈다는 헛소문이 도는 거지. 얼굴도 반반하니 데리고 다닐 맛이 여간 나겠어? 조용히 살겠다더니 이게 내 약혼식까지 망치려고.”
“알폰스는 내가 후원하는 단체의 수석 연구원이야. 형은 나갔다 하면 여자만 사들이고 다니니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겠지. 언약자도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어. 가서 당신 행적을 모두 불고 파혼이라도 대신 해주고 싶네. 남 일만 아니면.”
남 일이라고 선을 긋는 에드워드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둘째 형의 노란 눈알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이내 풀어지는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지은 그는 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을 들어 에드워드의 뺨에 갖다 댔다.
“살아서 치욕스러운 소문을 남기느니 죽어서 명예로워지는 방법도 있지. 너희 어머니처럼.”
손가락 두 마디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뱀처럼 속삭였다. 에드워드의 양 주먹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 대화를 듣지 못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대화에 신경 쓰느라 전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소란이라도 일어나면 곤란해지는 것은 에드워드 쪽이었다. 형들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겠지. 알폰스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려 그 비열한 입을 조용히 시킬 수도 있었지만 에드워드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알폰스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말만 해요. 당신 형이라고는 해도 저만한 남자 쓰러트리는 건 일도 아니니까. 물론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아니, 알폰스 하지 마. 그럴 필요 없어.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차가운 표정으로 에드워드가 말했다. 에드워드의 앞에 서서 그래봐야 네가 할 수 있는 게 분노밖에 더 있냐며 이죽이는 얼굴이 꼴 보기 싫었다. 알폰스는 그들을 가볍게 밀쳐 길을 트고 에드워드의 어깨에 팔을 감싼 채 자리를 벗어났다. 걸어가는 내내 에드워드는 바닥만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알폰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느꼈다.
“알폰스.”
그가 오랜 침묵 끝에 이름을 불렀다.
“너도 날 동정해?”
“그럴 리가요.”
“나는 가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다고 느껴“
“그렇지 않아요. 제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도 다 당신 덕분인걸요.”
“너는 늘 칼같이 선을 그으면서도 꼭 결정적일 때 날 붙잡더라. 그럴 거면 처음부터 다정하지나 말지.”
알폰스도 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친절함을 흉내 내긴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다정함은 늘 형의 몫이었다. 이곳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형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은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날이 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숨기지 못하는 본성은 에드워드가 약해질 때마다 튀어나왔다. 마치 형에게 하듯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됐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널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어.”
에드워드가 알폰스를 데려간 곳은 선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선착장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정교하게 제작된 요트가 그곳에 있었다. 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알폰스가 볼 때도 가격이 꽤 나가겠다 싶은 물건이었다.
“잘 쓰진 않지만 이건 내꺼야. 어렸을 때부터 요트 타고 다니는 걸 좋아했어. 기름 값이 많이 들기는 해도 관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나는 적당히 휴가 시즌에만 쓰면 돼. 자격증은 없지만 내가 이걸 운전해서 타고 나간대도 딱히 문제될 건 없어.”
“편리하네요. 돈이 많다는 건.”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 있고 싶어 이곳으로 알폰스를 부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그에게 베풀 수 있는,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알폰스, 여기 있으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아. 내 능력 안에서 네가 손에 넣고 싶어 하는 무엇이든 안겨줄게.”
재물로 환심을 사는 것만큼 유치하고 멍청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 제가 자신이 우습게 여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노골적인 방식으로. 겨우 이런 걸로 알폰스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말해본다. 차라리 이런 발악으로 동정이라도 사서, 그래서 그를 남게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에드워드는 그 정도로 절박했다. 그걸 알고 있는 알폰스는 그의 눈을 피했다.
“에드워드 씨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줄 수 없어요.”
“넌 날 사랑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구나.”
“당신도 처음엔 진심이 아니었잖아요.”
“처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냐. 매일이 조급하고 매 시간 불안해. 너는 내게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에드워드 씨는 영리하고 계산이 빠른 분이세요. 분명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이곳에 없더라도.”
“넌 도대체가. 사람이 여지라는 걸 몰라.”
말끝을 흐린 에드워드가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윈리를 만났을 때 받은 것이었다. 다시는 피울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허공으로 내뱉는 연기가 꼭 한숨같이 느껴졌다. 알폰스는 에드워드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숨을 몰아쉬는 일련의 과정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해가 떨어져 뺨에 닿는 바람은 어느새 쌀쌀했다.
“나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아버지는 내가 이튼 칼리지에서 군사학을 마저 공부했으면 한대. 작년부터 나왔던 얘기야. 이런 저런 핑계로 계속 미뤄오고 있었지만......”
그가 왜 여태 돌아가는 날짜를 미뤄왔을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는 내가 당장 돌아간다는데 아쉽지도 않냐.”
“아쉬워요.”
“제발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나와 함께 행복해질 순 없었어? 너의 미래에 나는 없어?’
하고 싶은 말, 마음에 묻어둔 말을 애써 삼키고 에드워드는 담뱃불을 뒤꿈치로 비벼 껐다.
“알폰스 엘릭. 마지막으로 물을게. 꼭 돌아가야만 해? 네가 가지 않겠다고만 하면 난 지금이라도.......”
“이미 아시잖아요. 제 대답.”
알폰스는 대화를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흔들리는 그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더 단호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냥 한 번 더 물어본 거야. 그러니까 표정 좀 피고 웃어라.”
알폰스는 웃지 않았다. 그를 대신하듯 눈썹을 내려 애써 웃어 보인 에드워드는 주머니의 은제 담뱃갑을 꺼내 알폰스의 가슴팍에 안겨주었다.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은행에 10만 파운드 정도 네 이름으로 넣어놨어. 내가 없어도 당분간 지내는 데는 큰 문제없을 거야. 혹시 부족하면 서랍 안에 있는 증명서 들고 가서 내 이름 대고 달아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쓰고 남은 돈으로는 너 좋아하는 애플파이나 잔뜩 사먹던가.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덧붙였지만 그가 부른 돈은 알폰스가 몇 년 치 생활비로 써도 문제없을 만큼 큰 액수였다. 얼마 전 연구소에도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했으면서. 알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 얼굴로 맞아줘야 해. 웃는 것까지도 안 바라니까.”
에드워드는 그 날의 인사를 끝으로 별다른 말없이 짐을 빼 나갔다. 알폰스가 연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에드워드의 물건은 방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유독 더 넓게 느껴지는 집에서 차게 식은 오트밀을 떠먹으며 알폰스는 한동안 듣지 않던 라디오를 켰다. 소리의 빈 공간이 어색했다. 그가 없어진 이후 알폰스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부쩍 줄었다. 에드워드가 독일을 떠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그에게서는 연락 한통 오지 않았다. 알폰스는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가 그렇게 깔끔히 자신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 꺼진 집엔 더 이상 하루 일과를 재잘거리는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알폰스는 그리움과 함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는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은 그를 그리워할 만한 자격이 없었다. 곧 떠날 사람이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되니 잘한 행동이었다고 다독이면서도, 그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에 집중할 때면 머리를 찌르는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알폰스는 꼭 로켓에 미친 사람 같았다.
동 터오는 새벽에 잠도 오지 않고 외로운 기분이 들 때면 알폰스는 침대 위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에드워드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면 혼자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떠난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많이 외로웠다는 사실을.
윈리가 연구실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였다.
그녀는 매우 굳은 표정이었다. 차분한 톤의 재색 정장을 차려입고 온 그는 딱딱한 얼굴로 서있었지만 알폰스는 원래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안색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시간 연락이 없던 에드워드의 소식을 들고 왔을 것이란 생각에 알폰스는 그녀의 방문이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내일이면 로켓이 발사된다. 어쩌면 자신이 이곳을 떠나기 전 에드워드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운이 좋으면 한 번 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하지만 한참이나 말없이 알폰스를 노려보던 그녀가 내민 것은 단출하게 봉해진 흰 봉투뿐이었다. 다른 전언은 없었다.
“읽어봐. 곱게 말은 못하겠다.”
좋지 못한 예감에 알폰스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가 건넨 것을 받아들었다. 봉투는 두 장으로 되어있었다. 하나는 에드워드의 인장이 찍힌 편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전사를 알리는 통지서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 뻔하고 알량한 가문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그는 제일 먼저 군대에 자원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알폰스 너를 보러가겠지만 네 연구가 성공했다면 너는 이미 그곳에 없겠지.]
아쉬움을 담아 담담하게 눌러쓴 필체는 간결했고 생에 대한 일말의 미련조차 없었다. 알폰스는 어쩌면 그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에드워드가 보낸 봉투 어디에도 회신을 받을 수 있는 주소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어. 일주일 후면 로켓이 발사 된다고. 축하해. 드디어 열심이던 연구의 성과를 거두는구나. 너머에 네가 원하는 세상이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어. 그곳에 네 형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진 않겠지.
하지만 만약 찾지 못한다 해도, 너만은 나를 기억해 줘.]
나를 기억해 달라는 문장을 끝으로 편지는 짧았다. 마담이 기르고 있던 고양이를 부탁한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알레르기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지조차 못했으니까. 혼자 남겨질 알폰스를 걱정해 따로 넣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폰스는 그가 군용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렴풋이 비행기 조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항상 자신의 곁에서 재잘대곤 했었지만 알폰스는 늘 그 말들을 주의 깊게 듣지 못했다. 그를 귀담아 듣기엔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고, 로켓 연구 외에는 일상의 다른 시간을 들여놓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폰스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접었다.
여태 그를 밀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밀어내지 못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다른 세계의 에드워드라 할지라도 내게 형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늘 자신이 그를 두고 가는 입장이라 생각했다. 이곳을 떠나고 나면 감정을 추스르는 쪽은 에드워드일 것이라고. 그러니 그가 눈치 챌 수 없게 자라나는 자신의 마음 정도야 괜찮을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에드워드는 한 번도 제게 화낸 적이 없었다. 마음을 주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자신을 몇 년이고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었지. 늘 베풀기만 했지만 에드워드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알폰스는 차마 소리 내 울 수조차 없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그건 이곳의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질게 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에드워드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사한 미소, 자신을 바라보는 쓸쓸하고 다정한 눈빛. 마음을 주지 않는 데만 신경 쓰느라 내내 잊고 있었지만 그는 마음 붙일 일 없었던 이 삭막한 공간에서 알폰스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문을 넘어와 지낸 3년 간 어떠한 미련도 남겨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당신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나는 이 세계에 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야 했어.
-너만은 나를 기억해 줘.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걸 내 안에 묻는다.
에드워드 하이드리히.
사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형과 너무도 닮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내게도 충분히 힘든 일이었어.
外
리젬블의 여름밤은 길었다. 열대야를 피해 밤 산책이라도 나가자며 알폰스를 이끈 에드워드는 연신 동생의 표정을 살폈다.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웃음을 잃었다. 문 안에서 진리에게 감정이라도 뺏기고 온 듯 인형처럼 변해버린 알폰스를 보며 에드워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갑옷에 갇혀있던 그 때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네가 영혼은 있지만 몸을 뺐긴 상태라면, 지금은 몸은 찾았지만 정신이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 같아. 이젠 찾아올 곳도 알지 못하는데.’
에드워드로서는 동생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향기 좋은 차를 우려 냉침하고 알폰스의 기분 전환을 위해 밤별을 보러가는 것이 그가 생각해낸 작은 해답이었다.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노력한다면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촉촉한 흙냄새와 함께 선선한 바람이 코끝에 와 닿았다. 들판 위의 풀은 강의 물결처럼 잘게 흔들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은 호수처럼 깊고 맑은 푸른색이었다. 흑옥 같이 짙은 풀 무덤 위로는 백색의 반디가 한둘씩 어둠 속에서 간간히 빛을 냈다.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알폰스만이 그곳에서 홀로 다른 세계에 있었다.
한 폭의 풍경화에서 벗어나 혼자 떠있는 외로운 섬, 에드워드가 말이라도 붙이지 않으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그는 어디론가 흩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알, 무슨 생각해?”
애써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옅게 불어오는 바람에 금빛의 머리칼이 한들한들 흔들렸다. 알폰스는 금방이라도 밤의 틈새로 먹혀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동생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말라갔다. 원인 모를 병세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두통. 그리고 가벼운 신경증. 잔뜩 갈라진 채 달싹이는 동생의 마른 입술엔 그저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다.
“.......에드워드 생각.”
그 말을 하며 알폰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에드워드는 더 묻지 않았다. 알폰스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고 일부러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알, 나도 늘 네 생각을 해. 이제 우린 계속 함께야.”
알폰스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주억이고는 이내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멜로디는 익숙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이 자주 밖을 보며 부르던 가사 없는 노래. 에드워드는 마음이 한 켠이 성벽처럼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자신은 알폰스 엘릭이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동생과 함께하지 못한 3년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도 더 큰 마음의 공백을 만들어 냈다. 이제 와서 매우기엔 그 틈새가 너무 멀고 깊어 돌이킬 수 없다고 느껴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 에드워드는 한 없이 작아졌다.
복잡한 심정을 뒤로 하고 알폰스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당겨 품에 기대게 했다. 옅은 색의 금발이 잘게 부서지며 가슴팍 위로 흩어졌다.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는 가엾은 나의 동생, 나의 사랑. 에드워드는 알폰스가 원하는 것을 평생 찾아줄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기분을 느꼈다. 가슴에 닿은 알폰스의 어깨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알폰스가 울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참 좋다. 그렇지?”
알폰스는 대답 대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형과 함께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공허감은, 자신이 이곳에서 가진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맛있는 식사를 해도, 아무리 좋은 곳에서 좋은 풍경이 보아도 나아지지 않는 이 감정. 이것은 본질적인 외로움에 관한 문제였다. 자신이 형을 사랑하고 형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아마 이 막연한 슬픔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사실은 알폰스를 더욱 괴롭게 했다.
제가 기억하는 에드워드는 실체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평행우주의 에드워드를 사랑하게 된다 해도 그것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형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걸까. 그래서 다른 세계의 당신마저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기억 속의 그가 말을 걸어온다. 이제 우리는 만날 일이 없다.
아니,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알폰스, 아직도 내 생각을 해?
-응 당신 생각을 해.
아마 영원히 잊히지 않을.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 생각을 해.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줄곧,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