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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창공에 연분홍색 종이꽃이 흩날렸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그 꽃잎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여관 주인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꼭 봄이 되돌아온 것만 같다고. 알폰스는 그 희망 어린 목소리에 그러네요, 하는 작은 긍정의 한 마디를 내뱉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떠나보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Gloria

 

센트럴 거리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어깨와 옷자락에는 종이 꽃잎이 잔뜩 붙어있다. 주인장의 말대로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꽃놀이라도 즐긴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봄의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알폰스는 여관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다. 가게 가장 안쪽 테이블에 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머그컵과 맥주잔, 철제 담배 상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시선을 책망으로 해석했는지 리자가 멋쩍다는 듯이 변명했다.

“오늘 같은 날은 괜찮잖아.”

“글쎄요.”

알폰스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하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리자는 몹시 피곤해보였다. 창이 이상한 곳에 나있는 탓에 사선으로 비껴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비춘다. 그녀는 그 날카로운 햇볕에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3시래.”

“그렇군요.”

“보고 갈 거니?”

리자는 알폰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팔을 힘차게 위로 뻗어 맥주를 주문했다. 서버가 테이블 위를 능숙한 솜씨로 치우고는 맥주 두 병을 새로 올려둔다. 어리둥절해 둘 다 서버를 올려다보자 서버가 빙긋 웃으며 서비스에요, 하고 속삭였다. 좋은 날이니까요,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2시 반에 리젬블행 기차를 탈까 해요.”

“.......현명한 선택이야. 에드한테 가는 거야?”

“네.”

알폰스는 리자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맥주 뚜껑을 열어 마셨다. 리자 또한 그런 알폰스의 행동에 개의치 않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몫으로 나온 맥주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좋은 날이야.”

“제 앞에선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하는 소리 아냐. 이날을 얼마나 꿈꿔왔는지 몰라. 그 사람도, 나도.”

“.......”

“인간성을 완전히 죽이는 게 힘들었을 뿐이야. 예견된 미래를 맞이하는 것뿐인데도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리자 씨.”

“그래서 딱 오늘만 이렇게 보내려고. 3시까지만, 이렇게.”

가게 밖에서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활보하는 모습이 보인다. 리자는 맥주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좋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 * *

 

 

 

로이 머스탱이 그린 청사진은 높고 넓었다. 그 길의 종착역에 그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그의 측근들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은 로이 머스탱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게 곧 그들이 그날이 오기 전까지 반드시 충분한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간은 있었지만 준비는 부족했다. 아니, 사실 아무리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 하더라도 그를 보낼 준비가 되는 날 같은 건 영원히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인 건 로이 머스탱, 본인이었다. 그는 차근차근 집무실과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정리해나갔다. 업무를 적임자들에게 각각 인수인계하고, 사용해왔던 저택을 처분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수중에 남겨진 돈은 전부 국고에 인수됐다. 로이 머스탱은 기꺼이 모든 재산을 국가에 내놓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죽을 건데 돈은 끌어안고 있어서 뭐하게, 하고 농담을 했다. 아무도 그의 농담에 웃음지어주지 않았지만 그는 되레 자기가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에게 핀잔을 줬다. 곧 은퇴한다고 상사를 푸대접한다고, 하지 않아도 될 소리를 덧붙였다.

에드워드는 그의 사형일이 정해지자마자 리젬블에 틀어박혔다. 나이가 들어 대놓고 서운하다는 둥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로이 머스탱에게 그는 그답지 않게 솔직하게 말했다. 두 눈 뜨고 가만히 보고 있을 자신이 없다고. 아직도 애새끼라서 미안하다고.

아무도 에드워드를 붙잡지 못했다. 로이 머스탱은 지나치게 유능한 스스로가 죽음 앞에 뒷걸음칠까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공개 교수형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의 호위였던 사람들과 예전 국가 연금술사 동료들이 감시 역을 맡는다. 어쩌면 탈주를 적극적으로 도울지 모를,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로이 머스탱이 작정하고 탈주하려 했을 때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알폰스는 그의 형이 명단에서 빠진 다음날,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서 빼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거라고, 아메스트리스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속살거렸다. 몇몇 이슈발인들은 로이 머스탱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꼭 처형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까지 미적지근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행동은 없고 수많은 말들만이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시계바늘은 숫자 3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왔어?”

에드워드는 부모님의 비석 앞에 앉아 있었다. 함께 여행을 다닐 때보다 몸이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몸을 둥글게 앉아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며 알폰스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응.”

“봤어?”

“아니.”

그 뒤로 에드워드와 알폰스 사이엔 한참동안 정적만이 감돌았다. 에드워드는 알폰스를 위로하기엔 너무 지쳐있었고,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말솜씨가 썩 좋지 못했다.

석양이 두 사람의 얼굴 위에 드리워질 때쯤, 에드워드가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알폰스.”

부드러운 음성에 알폰스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에드워드가 잔디가 듬성듬성 난 땅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알폰스는 그 손짓을 따라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곧 에드워드는 그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기댄다. 한 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알폰스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숨을 들이켰다.

“아메스트리스 최초의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아?”

“글쎄. 요 근래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들이 몇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지 않을까.”

정직하고 객관적인 대답에 에드워드는 푸스스,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웃었다. 알폰스가 질문에 항상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에드워드는 기상천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대응으로 자신의 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었다. 에드워드가 느릿하게 말했다.

“여행을 가야겠어.”

“어디로?”

가벼운 대꾸에 그가 대답한다.

“몰라.”

“뭐야 그게.”

“다시 안돌아올 거야.”

알폰스는 고개를 돌려 에드워드의 얼굴을 살폈다.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은 담담한 표정. 알폰스는 에드워드와 달리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어깨에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떼어내며 말했다.

“울지 마, 알폰스. 좋은 날이잖아.”

에드워드가 상냥한 목소리로 타이르고 나서야 알폰스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형에게 대꾸하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흔들렸다.

“시, 싫어.”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뺨을 두 손으로 닦아주었다. 한없이 자상한 손길이었지만 알폰스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알폰스가 쉰 목소리로 그의 형을 부른다.

“형.”

“응.”

“제발 나 좀 두고 가지마.”

이제 우리 둘뿐이잖아. 마지막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처절한 고백에 두 눈을 크게 뜬다. 알폰스의 말을 듣기 전까지 생각지 못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게 아니라는 걸.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는 사실을.

“.......봄에는,”

에드워드는 가까스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 안에서 굴린다. 혹시라도 또 알폰스를 상처 입힐까, 그는 겁내고 있다.

“다시 리젬블로 돌아오자.”

우리들에게도 봄이 찾아온다면. 알폰스와는 달리 에드워드는 말의 끄트머리를 속 안으로 삼켜낸다. 아직 센트럴에서 Gloria, Gloria, 하고 영광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붙잡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해가 완전히 저문, 여름밤의 일이었다.

w. 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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