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에드워드 엘릭이 떠나간 날은 뉴욕이 기록적인 폭우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날이었다.
참 안타깝네요.
가족이라곤 형제 단둘 뿐이라는데 말이에요.
교통사고였다죠?
하필 그런 천재지변이 겹쳐서….
쯧, 에드워드 씨 만큼 귀한 인재는 드물었는데.
조문객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은 에드워드의 직장 동료들이었는데 그들은 의무적인 몸짓으로 꽃을 내려두고 묘비 앞에 섰다. 그들은 떠나간 자의 혼자 남겨진 가족이 실의에 젖어있든 말든 에드워드의 일을 가십거리마냥 떠들기 바빴다.
“알….”
윈리가 조심스레 다가와 알폰스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알폰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걱정스러운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알폰스의 눈은 오직 한 곳만을 향해있었다.
묘비명 ‘트리샤 엘릭’.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에드워드 엘릭’의 묘.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음각한 글자조차 잘 보이지 않는 묘비를 그는 그저 멍하니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
나른한 주말의 오후.
아이보리색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을 읽던 알폰스가 햇빛을 피해 뒤척거리다 가슴 위에 책을 얹었다. 책에서 눈을 떼자 자연스레 시선이 향한 곳에는 에드워드가 있었다. 러그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자신의 형. 빤히 바라보는데도 한번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알폰스는 슥, 몸을 일으켜서 소파 중앙으로 몸을 옮겼다. 바닥에 책이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조심스레 에드워드를 자신의 양다리 사이에 두고 소파에 기댔다. 그리고 그의 머리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슬쩍 스마트폰 속의 내용도 읽고 살짝 발장난도 쳐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에드워드에, 알폰스가 쿡쿡 웃으며 입술을 뗐다.
“형.”
갑작스러운 부름에 깜짝 놀란 에드워드가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끼고 있는 다리를 보고는 위로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에 알폰스가 씨익 웃었다.
“윈리랑 사귀어?”
에드워드는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호박색 눈으로 의문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알폰스는 눈짓으로 그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슥 가리켰다. 메신저를 통해 윈리와 대화 중이었던 에드는 아, 하며 폰을 뒤집어엎었다.
“그런 거 아냐.”
그냥 친구지. 라고 덧붙이는 에드워드에 흐음, 하며 알폰스가 허리를 숙였다. 귓가에 살풋 닿는 숨에 움찔, 몸을 떠는 에드워드의 양어깨를 그러쥐며 그 위에 살짝 턱을 올린다.
“그럼 형은 좋아하는 사람 없어?”
에드워드가 알폰스의 의중을 파악하려 살짝 찌푸린 눈으로 동생을 돌아봤다. 지지 않겠다는 듯 강렬하게 눈을 마주치는 알폰스.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둘의 시선이 한참을 마주하다 결국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없어.”
“정말?”
“정말.”
없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사실대로 말해봐~ 하며 에드워드의 목에 머리를 부빗거리는 알폰스에 팔을 들어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트레이드마크인 예의 씩 웃는 웃음을 지은 에드워드가 없다니까.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더 이상의 말 없이 방으로 가버리는 에드워드의 뒷모습을 보며 흐음, 하고 고개를 까딱거리던 알폰스는 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어 들고 소파에 다시 누워 표시해 둔 페이지를 펼쳤다.
***
“다녀왔습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에드워드가 눈을 반짝 떴다. 시계의 시침은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으로 대충 눈을 비빈 에드워드가 하품하며 몸을 일으켰다.
“웬일로 늦었네.”
“응, 프로젝트 때문에. 형은 왜 방에서 안 자고 여기 있어.”
“네가 안 와서.”
걱정했다는 말투에 알폰스가 키득 웃었다.
“애도 아닌데 뭐.”
일 때문이라 하더라도 평소 늦는 일이 별로 없었던 성실한 알폰스 인지라 에드워드는 조금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현관의 벽을 짚고 서서, 불편한 듯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헐겁게 고치는 알폰스에게 다가가자 미약한 알코올의 냄새가 흩어진다.
“술 마셨어?”
“하하 응. 조금.”
그것도 의외네. 속으로 생각한 에드워드는 살짝 비틀거리는 알폰스의 팔 한쪽을 붙잡아 지탱했다. 말에서는 전혀 취한 티가 나지 않지만, 몸에는 조금씩 취기가 올라오는지 걸음이 엉망이다. 하지만 본인은 기분이 좋은 듯 작게 흥얼거리는 알폰스를 부축해 방까지 데려다주자마자 에드워드의 팔을 휘휘 저어 내린다. 그리고는 혼자 비척비척 걸어서 커다란 침대에 풀썩 누워버린다. 몇 초간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알폰스가 침대 앞에 가만히 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에드워드를 올려다봤다.
알폰스에게 에드워드는 한 살 차이의 형이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마치 또 다른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미성년자의 나이에 조기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뛰어든 에드워드였지만 한 번도 약한 소리를 한 적이 없고 그저 묵묵하게 자신을 지켜주었다. 겨우 1년 빨리 태어났을 뿐인데. 돌아가신 어머니와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제가 해야 할 몫 그 이상의 일들을 해왔던 에드워드였다. 그런 형이었다. 어렸던 자신은 그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다.
“형은 어떻게 버텨?”
어떻게 버텼어? 밑도 끝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그동안 묻고 싶었던 한마디를 내뱉자 에드워드의 눈이 커졌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는지 그저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온다. 그러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에드워드는 곧 수마에 빠져 눈이 반쯤 감긴 알폰스를 보고는 하려던 말 대신 포근한 한마디를 건넨다.
잘 자.
-
쿨럭.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알폰스가 급히 몸을 일으켜 기침했다. 에드워드에게는 조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안주도 없이 거나하게 마셨던 술 때문인지 목 끝까지 신물이 올라와 결국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고 말았다.
‘두 시간 정도 지났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캄캄했고, 몸을 더듬어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켜니 새벽임이 분명한 세시가 표시되었다. 그러고 보니 취해서 씻지도 않고 누워버렸다. 알폰스는 찌뿌듯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스트레칭을 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일단 물부터 마셔야겠다.
-
“흐읏…”
물을 가지러 부엌으로 향하던 알폰스의 귓가에 미묘한 신음이 들려왔다. 형?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알폰스가 에드워드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에드워드의 방과 가까워질수록 작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커졌고, 알폰스는 그 소리가 악몽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살짝 열려있는 방문,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열기, 억눌린 신음. 여러 가지 정황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알폰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형은 문을 잘 닫고 해야지 이런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알폰스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살짝 돌려 닫으려는 순간.
“알….”
멈칫. 알폰스의 몸이 굳었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듯 재차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폰스…! 흣!”
민망함에 땅만 바라보고 있던 알폰스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임이 분명한 형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에드워드의 행위는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도 알폰스의 이름은 두어 번쯤 더 내뱉어졌고, 알폰스는 마치 석상처럼 가만히 굳어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차가운 얼굴로 조용히 뒤를 돌았다.
***
그 날 이후, 알폰스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지냈다. 도무지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아 밤을 지새우고 출근-퇴근만 하길 며칠째, 에드워드의 얼굴을 보면 화를 내고 말게 될 것 같아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괜히 에드워드의 취침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반복했는데.
“알.”
조금 핼쑥한 얼굴의 에드워드가 알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는 알폰스를 조용히 응시한다. 염려스러운 눈빛. 그 깊은 곳까지 바라보노라면 자신을 향한 충만한 애정만이 가득함을 알기에 알폰스는 그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입술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말을 내뱉었다.
“형, 나를 좋아해?”
“…? 당연하지.”
“왜?”
“내 동생이니까.”
“그렇지. 난 형 동생이지.”
동생. 그 단어를 몇 번쯤 되뇌자 에드워드는 의문과 걱정이 반반인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에 알폰스는 퓨즈가 끊긴 듯,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에 있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뱉어냈다.
“형은 동생에게도 욕정 해?”
에드워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응? 하고 한 번 더 묻자, 에드워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알폰스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왜 대답을 못 해?”
“…….”
“설마 진짜야?”
에드워드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자, 알폰스가 에드워드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미안.”
단 둘뿐인 조용한 실내에서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긍정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하- 알폰스는 조소했다.
“진심이야? 형 이상해.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친동생한테 발정한다니.”
“….”
폭력적인 언사에 에드워드의 입이 꾹 다물렸다.
“진심이냐니까? 나 보고 말해.”
알폰스가 커다란 손으로 거칠게 들어 올린 에드워드의 얼굴은 상처로 얼룩져있다. 상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왜 형이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거야? 배신 당한 건 나인데.
"형.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는 형제인데."
제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알폰스는 차갑게 에드워드를 내려다봤다. 그에, 상처받은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숨겨지지 않는 건지 에드워드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짓씹으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거짓말로라도 아니라고 하지는 않네….”
“미안해.”
둘 사이에 침묵이 가라앉는다. 다시 바닥만 내려다보는 에드워드에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오른 알폰스가 화내듯 말을 토해냈다.
“나 당분간 나가 있을게.”
에드워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형의 얼굴 보고 싶지 않아. 마음 정리를 좀 하자. 나도, 형도.”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알폰스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고 몸을 틀자 에드워드가 급하게 알폰스의 팔을 붙잡았다. 절박한 손길이었다.
“내가 나갈게.”
“…”
“미안. 넌 여기 있어 알.”
그렇게 말하는 에드워드를 알폰스는 말리지 않았다. 그저 에드워드에게 붙잡혀 있던 팔을 빼내어 팔짱을 낀 채 삐뚜름하게 서서 에드워드가 하는 것을 지켜볼 뿐.
본인이 나가겠다고 말을 하고도 손을 잘게 떨며 멍하니 서 있는 에드워드에게 내가 갈까? 하니 그제야 에드워드가 몸을 돌린다. 방에서 간단하게 물건을 꾸려 나온 에드워드는 다시 현관 앞에 서서 어물쩍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을 시리게 쳐다보는 알폰스의 눈빛에 이내 곧 주먹을 한 번 꾹 쥐고는 문을 열었다.
***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알폰스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집의 온기가 사라지고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 외에는 변한 것도 없었다. 알폰스는 창가에 기대 며칠 전의 일을 회상했다.
사실 에드워드의 자위행위를 본 그 순간 알폰스의 머릿속을 지배한 감정은 놀람도, 혐오도 아닌 배신감이었다. 알폰스는 동성 간의 사랑을 터부시하지 않았다. 그저 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하나뿐인 보호자이자, 친구이자, 형인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욕정 한다는 사실이 배신으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격렬하게 자신을 감싸던 배신감은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미안함이 자리 잡았다.
상처받았었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던 에드워드의 얼굴이 떠오른다.
“젠장”
알폰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소용돌이처럼 알폰스의 내면을 휘감은 감정의 이름은 후회였다.
하루면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에드워드가 생각보다 많이 늦다. 화났나? 오면 일단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아니, 연락이 먼저일까? 이성을 되찾은 알폰스가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을 꺼내는 그때, 거실 쪽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드-! 문도 안 잠그고 지내면 어떡해.”
“윈리?”
“어? 알이구나. 잘 지냈니? 에드는?”
갑작스러운 방문, 바라던 사람은 아니고, 형을 찾는다. 알폰스는 조금 당황했지만 티내지 않고, 뭐라 대답하면 될까 하며 고민하다 답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형은 집에 없어. 윈리는 무슨 일이야?”
아! 이거, 얼마 전에 에드가 맡긴 물건. 별거 아냐. 문은 열려있을 줄 몰랐는데, 손잡이 돌려보니 열리네? 막 들어와서 미안해. 생긋 웃으며 속사포처럼 말하는 윈리를 빤히 쳐다보자, 윈리는 눈짓으로 자신의 발아래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녀가 양팔을 가로로 쭉 뻗어야 겨우 들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상자 한 개가 있었다.
“그나저나, 에드는 어딜 간 거야?”
“전화해보지그래.”
“며칠째 연락이 안 되는걸.”
“안된다고?”
윈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희 혹시 싸웠니?”
“싸우긴. 나이가 몇인데.”
윈리가 그렇지? 하고 팔을 들어 알폰스의 등를 퍽퍽 쳤다. 힘이 실린 손길에 알폰스가 살짝 찡그리자 윈리가 키득 웃었다. 알폰스는 윈리에게서 조금 비켜섰다.
“형 오면 전해줄게.”
“고마워. 그런데 정말 안 싸운 거 맞지?”
재차 물어오는 윈리의 눈은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확인의 의미로 걱정을 담고 있었기에 알폰스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안심한 윈리가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가게?”
“응. 또 보자 알!”
윈리가 돌아가고, 잠시 고민하던 알폰스는 휴대폰을 들었다. 익숙하게 에드워드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어보지만 통화 연결음만 계속 들리고 상대는 받지를 않는다. 역시 화가 많이 난 걸까? 걱정으로 초조해졌지만 기다리는 방법 외엔 별다른 수가 없어서 알폰스는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또 혼자인 밤이 찾아온다. 거대한 피로가 알폰스를 덮쳐왔다. 하지만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알폰스는 이번에도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웠다.
날이 밝아도 에드워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
새벽 내내 멈추지 않는 천둥과 번개로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급작스러운 폭우는 흙과 먼지로 가득 차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배수구에 가로막혀 길 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와 알폰스가 사는 집 앞의 커다란 공원은 물론이고 도로까지도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에드워드가 집을 나선 지 일주일 째. 알폰스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누르며 리모컨을 들었다. 켜진 TV속에는 뉴욕이 기록적인 폭우로 사상자가 출몰하고 있다는 아침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어떻길래? 새벽에 시끄러워서 온 집안의 창문을 다 닫고 커튼을 쳐놓았던 알폰스는 바깥 상황이 궁금해 거실 전체를 어둡게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바로 그 폭우 때문에 가시거리가 매우 짧다. 한 치 눈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
가만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 테이블 위에 든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린다.
-♩♬♪♩♪
지역 번호가 붙은 알 수 없는 전화번호. 원래의 알폰스라면 주저 없이 거절을 눌렀겠지만, 혹시나 에드워드일까 싶어 전화를 받았다.
[알!]
“윈리?”
[알! 에드가…흑, 에드가…!!]
…
‥
에드워드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모든 게 부질없다.
장례의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은 비와 먹구름을 걷어내고 햇살을 비춰주었다.
알폰스는 조문객들이 다 돌아가고 나서도 묘비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윈리가 울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저 각인된 형의 이름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드워드 엘릭]
마치 확인 사살을 당한 듯 끔찍한 감정이 심장을 옥죄어온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탁.
무릎이 꺾였다.
알폰스는 무너진 채로 국화로 가득한 묘비를 붙잡았다. 이곳은 현실이다. 꿈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그 사실에 알폰스는 오열했다.
-
싸늘한 집으로는 돌아가 봐야 아무도 없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잖아. 알폰스는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과거에 느꼈던 배신감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의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상처 입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에드워드를 잔뜩 상처 입혔던 건 단순한 배신감 때문이 아니었다. 에드워드의 마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알폰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시커먼 욕망이 꿈틀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감추고 싶은 알폰스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형을 향한 마음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중에는 당연히 후자가 더 컸기 때문에. 그 감정을 꽁꽁 묶어 심장 저 아래쪽에 놓아뒀을 뿐이었다.
에드워드 본인은 몰랐겠지만, 가끔 묘하게 텐션이 올라간 채 자신을 대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그의 진심이 조금씩 새어 나왔기 때문에 에드워드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가끔 티가 났으니까. 그동안은 모른 척, 아무렇지 않게 그를 마주했지만, 사실은 에드워드가 그럴 때마다 더 닿고 싶고, 끌어안고 싶은 욕망이 스멀거렸다. 알폰스는 그 마음을 부정하기 위해, 튀어나오려는 욕망을 방어하기 위해 에드워드를 더욱 몰아세운 것이었다. 우리는 형제라고. 나는 우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었는데, 형이 그걸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형이 나쁜 거라고. 비열하게 에드워드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나는 아니라는 듯이, 깨끗하다는 듯이. 알폰스는 인정해야만 했다.
‘형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나야.’
알폰스 내면의 마음의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내가 죽인 거라고.’
에드워드의 비석 앞에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던 알폰스가 일어났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빌었다.
“형을 돌려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를 대신 데려가!
형은,
형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까!
돌려줘.
제발…!
***
포근하다.
차갑게 얼어있어야 할 몸이 온기로 감싸져 있다. 알폰스가 눈을 떠서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사치스럽게 이불까지 덮은 채로. 언제 집으로 돌아왔지? 미간을 좁히며 앞머리는 쓸어 올리는 알폰스의 귀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가 들려왔다. 또 윈리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에드워드에게로 향하기만 하는 알폰스를 말리기 위해 윈리는 하루에 한 번, 형제의 집을 방문했다.
실의에 빠진 알폰스는 나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완전히 빛이 차단된 시야에 청각이 조금 더 예민해졌을 때, 윈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문밖에서 말을 걸어왔다.
“알폰스, 일어났냐?”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면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 알폰스가 커다랗게 눈을 떴다.
“……형?”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당황한 알폰스가 경계를 하면서도 반쯤 몸을 일으켜 문밖을 향해 되묻자, 이번엔 문 바로 앞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그래. 일어났으면 나와. 벌써 오후라고.”
“…!”
알폰스는 급하게 일어나 침대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동시에 탁자에 에 발이 걸려 쿠당탕, 앞으로 한 번 굴렀다.
“큿”
“알?! 괜찮아?”
방안에서 난 큰 소리에 놀랐는지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닥에 부딪히자마자 티가 나게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무릎을 주먹으로 감싸고 있자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리깐 눈앞에 에드워드의 발이 나타났다. 팟- 고개를 들자 꿈에서도 그리던 얼굴이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드워드였다.
“형!”
무릎의 통증 따위 제쳐두고 일어난 알폰스가 달려들어 안아오자 에드워드가 커다란 그를 받치느라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났다.
“진짜 형이야?”
순간 당황한 에드워드가 팔을 벌린 채로 멈췄다.
“무슨 소리야 알. 많이 아파?”
“형, 형 맞는 거지?”
그렇지? 다급하게 한 번 더 물어오는 알폰스에, 에드워드는 일단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폰스가 그를 더욱 끌어안고 에드워드에게는 뜬금없는 사과의 말을 건네 왔다.
“형 미안해.”
“알폰스, 왜 그래?”
“미안 형, 내가 잘못했어. 미안, 미안….”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는 알폰스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에드워드가 차분하게 동생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 손길에 알폰스의 몸이 움찔 떨렸고, 곧 에드워드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알?”
자신의 부름에도 알폰스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놓지 않겠다는 듯 얼굴을 부비며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줬다. 곧 귓가에 억눌러진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멈칫. 에드워드는 토닥이던 손을 가만히 등에 얹어 슥슥 쓰다듬었다. 몇 분 쯤 지났을까. 알폰스가 몸을 살짝 떨어트렸다. 에드워드가 그를 올려다봤다. 발갛게 부어 울멍울멍 거리는 눈은 자신만을 담고 있다. 조금 묘한 기분에 알폰스? 하고 다시 부르자 멈춰있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온다.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오자 에드워드가 다시 당황했다.
“울지마….”
알폰스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에드워드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뺨에 얼룩진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알폰스는 에드워드를 끌어안은 손은 그대로 두고, 자신의 얼굴을 에드워드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바짝, 입술에 숨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 에드워드가 당혹스러운 듯 눈동자만 도록 굴리자 알폰스는 눈물이 맺힌 채로 해사하게 웃었다.
“형.”
“응?”
“사랑해.”
에드워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귀엽다. 알폰스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 붉어진 볼에 입을 맞췄다.
하늘이 바람을 들어주었다.
알폰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커다란 기회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다시 시작하자.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