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인
@you_4679
[ Summer Vacation ]

드디어 전쟁이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전사들을 애도했다. 칼과 창을 버리고 다시 농기구를 들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온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 때, 로운 왕국의 보물. 은빛 방패공자 케일 헤니투스가 새 국왕의 집무실에 당도했다.
그러고는 그의 책상에 흰 종이봉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게 뭐지?”
“앞으로 한 달간 휴가 갑니다.”
“뭐? 잠...!!”
“그럼 이만.”
“케이이일!!!!”
이상함을 감지한 알베르가 벌떡 일어나 바로 손을 뻗었지만, 이미 라온의 텔레포트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케일을 삼킨 빛무리가 완전히 사그라들고 케일의 신형이 사라졌다.
알베르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한 채, 쥐고 있던 봉투를 떨어트렸다.
“돌겠네...”
알베르는 당분간 혼자 국정을 돌봐야 하는 착잡함에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 시각, 라온의 텔레포트로 짱돌의 저택으로 돌아온 케일은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는 인원들에 당황했다. 론, 비크로스, 온, 홍, 최한, 로잘린, 메리, 하나, 클로페, 에르하벤. 분명 제가 부른 것은 온과 홍, 라온, 메리, 비크로스 밖에 없었는데 어찌 이만큼 늘어났는지.
“모두 모여 있다...!! 인간!!”
“케일 늦었다는 건데.”
“많이 기다렸다는 건데.”
케일이 돌아오자 온과 홍이 케일에게 다가가 그의 발치로 와 뺨을 비볐다. 케일은 허리를 숙여 그런 온과 홍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온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다들 안 바쁩니까?”
“도련님을 곁에서 보필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제 아들의 곁에 서 있던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끔 이런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죠.”
에르하벤의 옆에서 마력 운용 방식에 대해 듣고 있던 로잘린이 말했다.
“케일님이 가시는 곳이 그 어디든 함께 할 것입니다.”
성큼 걸어가 케일의 옆에 선 최한이 말했다
“메리가 가는 곳이면 나도 갈 거야.”
메리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하나가 재빨리 덧붙였다.
“나는….”
“됐습니다.”
케일은 에르하벤의 말을 끊고 라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라온.”
케일의 부름에 라온의 광범위 텔레포트 마법이 그들을 감쌌다. 라온의 마법이 만들어낸 빛무리 속에서 케일은 이마를 짚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몇 년 전, 케일이 정글의 여왕 리타나에게 꺼지지 않는 불을 꺼주고 선물 받은 땅으로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땅 위에는 제법 규모가 큰 별장이 축조 되어있었다. 바다와 가까이 지어진 이 저택은 어느 곳에 있어도 창문으로 청량한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론은 비크로스와 함께 대략적인 별장 구조 파악을 위해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별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금방 나온 론은 여느 때와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을 안내했다.
“별장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1층에는 주방과 식당 그리고 방 3개가 있습니다. 2층에도 방 3개가 있고, 3층에는 2개 있습니다. 모두 일행 분들이 사용하시기 부족함 없이 넓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니 바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 사이 라온이 별장에 텔레포트로 빠르게 둘러보고 돌아와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케일에게 외쳤다.
“인간! 인간! 2층 첫 번째 방이 제일 넓고 좋다!! 그 방으로 하고 싶다!!”
“좋은 생각이라는 건데.”
“막내 말이 맞다는 건데. 빨리 가자는 건데!”
라온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온과 홍은 잔뜩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케일의 바짓단을 물고 어서 가자며 재촉했다. 하는 수 없이 케일은 첫 번째 방을 사용하는 것으로 장해졌다. 케일은 계단에 발을 걸친 상태에서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적당히 알아서 정해.”
그렇게 그는 평균 나이 n세의 재촉임에 못 이겨 먼저 자리를 떴다. 케일이 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론이 입을 열었다.
“1층은 저와 비크로스가 하나씩 사용할까 합니다.”
주방과 여러 저택 시설과 가까운 1층에 머무르며 일행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돕기 위해 론과 비크로스는 1층을 선택했다.
“메리, 어디가 좋을 것 같아?”
“저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아이들과 함께 3층을 쓰도록 할게요.”
하나와 메리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로잘린도 그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론은 여지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최한과 에르하벤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에르하벤은 슬쩍 최한에게 눈길을 줬다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박복한 놈과 같은 층을 쓰긴 싫구나.”
에르하벤은 말을 끝내자 마자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그렇게 케일의 옆방은 최한의 차지가 되었다. 최한은 묘하게 들뜬 기색을 보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일행들은 금방 짐을 풀고 방을 나왔다. 온과 홍은 오랜만에 인간의 모습을 했다. 온은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리고, 푸른색 리본이 달린 챙이 넓은 베이지 색 모자를 썼다. 하얀색 원단에 날개 달린 민소매 원피스가 해맑게 웃고 있는 온과 잘 어울렸다. 홍은 온이 쓴 모자보다는 챙이 더 좁은 푸른 리본 달린 모자를 썼다. 위에는 흰색 반팔 셔츠를, 아래에는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었다. 이에 맞춰 케일은 홍이 쓴 모자와 똑같은 디자인의 모자를 라온에게도 씌워주었다.
“이제 갈까.”
케일이 운을 떼자마자 제 형제들과 같은 모자를 써서 기분이 좋았던 라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로 텔레포트 했다. 잔뜩 물놀이를 기대하고 있던 n세즈들은 바로 바다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흐뭇하다는 듯이 평균나이 n세들을 바라봤다.
“으으...차갑다는 건데.”
“그래도 기분은 좋다는 건데!”
쾌활하게 밝게 웃는 홍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홍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좋으면 이거 한번 맞아보라는 건데!”
이렇게 말하며 온은 가만히 있던 홍과 라온쪽으로 물을 튕겼다.
“나는 아직 좋다고 안했다...!!”
조심스레 발끝으로 바닷물을 만져보던 라온은, 온의 기습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라온의 소심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온은 꺄르르 웃으며 제 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물을 튕겨댔다. 그런 전투적인 온의 모습에 홍과 라온도 전의를 불태우며 반격했다.
“지지 않겠다는 건데...!!”
홍이 온쪽으로 마구잡이로 물을 헤치며 튀겼다. 그때 홍의 옆에 있던 라온이 홍이 튀긴 물에 얼굴을 찰싹 맞았다. 부르르 떨어 또 물을 털어낸 라온은 크게 소리쳤다!
“둘 다 봐주지 않겠다...!!”
그러면서 라온은 앙증맞은 양 발로 온과 홍을 향해 재빠르게 물을 튀겼다.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와 메리가 함께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하나와 메리는 평소와 다르게 최대한 간소하게 차려입었다. 깊은 후드로 제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닌, 더위를 물러내기 위해 팔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홍처럼 무릎 아래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푸른 바다를 배회했다.
케일은 론이 펴 놓은 큰 양산이 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야무지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케일의 양 옆에는 평소보다 간소하게 차려 입은 최한과 로잘린, 에르하벤이 같이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한참을 놀던 아이들의 얼굴이 금세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붉게 탔다. 유심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로잘린은 아이들에게 온도 조절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바로 에르하벤의 마법이 붉게 탄 아이들의 피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들의 마법을 느낀 라온이 활짝 웃으며 그들을 향해 미소를 내지었다가 다시 물놀이에 열중했다.
“평화롭네요.”
“...”
“공자가 아니었다면, 저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요?”
“...”
원작 속에서의 라온은 광룡이 되어 미처 날뛰었다. 그 이름조차 없던 광룡은 스스로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많은 인명피해를 내며 죽었다.
온과 홍희 이야기는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케일을 만나기 전에는 부랑자의 거리에서 배를 곯고 있었다.
“모두 케일님 덕분입니다.”
잠자코 케일의 옆에 서 있던 최한이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이름 조차 없었던 그 용은 이젠 이름이 있었고, 배를 곯으며 거리를 전전하던 아이들은 제 보금자리에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지금 사랑받고 있었다. 합당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케일은 이 아이들의 삶을 바꾸었고, 그리하여 이 아이들의 서사에 늘 ‘그’가 함께 했다.
“케일!”
“인간!”
잘 놀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케일을 돌아보며 불렀다.
“음?”
“혼자 뭐하냐는 건데!”
“같이 놀자는 건데!”
“이거 기분이 좋다!! 인간도 와서 같이 하자!!”
“뭐? 잠깐!”
잔뜩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케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온과 홍, 라온이 잔뜩 젖은 몸으로 케일의 품안에 안기는 게 더 빨랐다.
“윽...”
케일은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온이 케일의 왼팔을, 홍이 오른팔을 붙잡아 앞으로 끌었다. 케일이 느릿하게 걸어가자 라온이 등 뒤에서 케일을 등 떠밀며 빨리 바다로 들어가자며 재촉했다. 그 모습에 최한과 로잘린은 빙그레 웃었다. 케일도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허어.”
눈치 챈 에르하벤이 서둘러 텔레포트로 도망쳤다.
갑자기 에르하벤이 사라진 자리를 멀뚱히 바라보던 최한과 로잘린은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라온, 저 둘도 데려와.”
급하게 로잘린은 텔레포트를 시전하고 최한은 재빠르게 피하려고 했지만, 둘 모두 위대한 용 라온에게 붙잡혀 바다 위로 텔레포트 된 채, 물속에 빠졌다.
“꺄악-!”
“윽!”
그렇게 그들은 붉은 노을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일 때까지,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__________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