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꽤 더운 날이었다. 어느 나라 어디 도시만큼 습하고 덥지는 않았지만, 태양의 손길이 굉장히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주 여유롭게 흔들의자에 앉아 여름의 대표 과일인 체리를 하나 입에 넣더니 오물거리다 씨앗을 뱉어내었다.
"지금 가자고?"
"가보고 싶은데?"
"재미있을 것 같은데?"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와 케일과 마주하였다. 이구동성으로 바다에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는 이 녀석들을 가만 바라보던 케일은 제 머리카락 색과 닮은 체리를 한 알 더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인간, 벌써 집안에만 있은 지 5일하고 2시간 36분 지났다. 곧 있으면 37분이다."
이 똑똑한 용은 시간을 아주 철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누가 현재 속성 아니랄까 봐, 지금 현재 케일의 상황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다. 잦은 기절과 각혈로 인해 얻어낸 휴가를 만끽하고 있던 케일은 잠시 아무 말 안 하다가 씨앗을 뱉어내었다.
"안 가."
왜 가야 하냐는 듯한 얼굴에 고양이들은 꼬리를 한번 빳빳하게 세웠다. 파닥이면서 허공을 돌아다니던 용의 모습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탁자 위에서 체리를 툭툭 치던 그 귀여운 생명체들도 곧장 탁자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린다.
"바다, 이야기로 밖에 안 들어봤다."
"고래족, 봤잖아"
"... ... 해변을 말한 거다."
얼씨구?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슬슬 긁는 모습이 투정 부리는 아이 같았다. 아이가 맞지만. 평균 9세의 아이들은 불만스레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고는 늘어졌다.
"해변에서 바캉스라는 거 하고 싶은데?"
"재미있는 것이 많을 거라고 그랬다!"
"막내말이 맞는데!"
"누가 그랬는데?"
"한스가!"
이구동성으로 한스라고 외치는 애들의 눈이 기대감에 반짝였다. 케일은 체리를 한 알 더 만지작거리다가 담담히 입안에 체리를 밀어 넣었다. 그리곤 오물거리며 한껏 도련님의 예의 없음을 보여주었다.
"론, 가서 한스 불러와"
***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바람에 케일은 자신마저 해변의 한 조각이 된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는 붉은 머리는 안 그래도 더운 날을 더 뜨겁게 달구는 기분이 들게 했지만, 그는 더운 날을 피하고자 썬 베드와 양산 밑에 앉아있었다.
"이런 휴가는 또 오랜만이네요"
가볍게 말하는 최한은 평소와는 다른 가벼운 옷차림을 입고 바닷가에 서 있었다. 여전히 썬 베드에 앉아있는 케일의 옆에 서서 저 멀리서 시시덕거리며 돌아다니는 어린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케일은 론이 가져온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가만히 해안을 바라보았다가 그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부추긴 죄를 물어 한스에게 바닷가로 휴가를 갈 채비를 하라고 시켰다. 한스는 밑도 끝도 없이 진행될 계획을 기획할 노예가 되어버렸고, 곧이어 아이들의 기대와 희망을 이루어주어야 할 임시 수호천사가 되어주어야 했다. 지금은 헤니투스 저택에서 늘어져 있을 한스를 가만 생각하던 케일은 그냥 가만히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시다. 정신이 맑아졌다. 한스의 고된 노력과 그 가벼운 입으로 인하여 오게 된 바닷가에서 케일은 어느 나라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여름 휴가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공자는 바다에서 노는 것에 흥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데, 어쩌다 온 거에요?”
“그러게요. 어쩌다 온 걸까요.”
가볍게 묻는 로잘린은 그 곱슬곱슬한 긴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태양 볕 아래에 섰다. 썬 베드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조금 마시던 케일은 태연하게 곁에 서있던 론에게 레모네이드를 넘겨주었다. 이미 바닷가와는 멀리 있었다. 더 가까이 가기 싫었다. 애초부터 바다와 자신은 그리 상성이 맞지 않았다.
케일을 바라보던 로잘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유로움이 가득한 수평선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추가되었다. 케일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푸른 바다. 해맑게 웃으면서 물살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은빛 묘족 소녀, 그 옆에서 뜨거운 모래를 헤집어보는 붉은 묘족 소년, 그리고 공중을 떠다니면서 유영하는 검은 막내 용. 그 옆에서 바라보는 붉은 머리의 마법사. 그리고 우르르 몰려오는 아이들.
아이들?
케일은 모래사장이 뜨거워서 신기루를 본 줄 알고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눈을 한번 끔뻑였다가 다시 해변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다. 누가 보아도 아이들이었다. 그것도 늑대족. 쟤네가 왜 여기에 있냐는 표정으로 케일은 해변을 바라보다가 제 옆의 최한을 바라보았다. 최한의 표정은 무더운 여름날에 빙수 한 수저를 떠서 입안에 밀어 넣은 것만큼 상쾌해 보였다.
“라크도 왔네요.”
그러다 보니 한스가 언급했던 일원 중에 라크가 언급되긴 했었다. 라크가 온다면, 라크만 올리가 없긴 했다. 푸른 늑대족의 우두머리는 외로운 자리였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외면하지는 않으니까. 라크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케일의 기척을 눈치챈 라크는 어린아이 특유의 해맑은 웃음으로 케일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였다.
“… 뭐, 가끔은 이런 여행도 괜찮겠지.”
“그렇죠?”
케일의 말에 최한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났구만, 속으로 생각하며 최한을 힐끔이며 바라보던 케일은 조용히 고개를 까딱이며 가보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가로질렀고, 케일은 차분히 수평선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아주 조용히, 바닷바람만 쐬고 가는 것이 케일의 목표였다.
***
저 멀리 수평선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람은 또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땀을 조금 흘리며 검은 긴 로브를 두르고 있는 메리는 바다의 모래를 한 톨 한 톨 모두 기억할 모양인지 빤히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가라는 것은 이렇게 평화롭구나. 차분하게 파도의 일렁이는 하얀 물결을 바라보던 메리는 소란스러운 곳을 한번 쓱, 바라보았다가 빤히 바라보았다.
"메리는 같이 안 노는 건가?"
"저는 어떻게 놀지 모릅니다."
때마침 메리를 발견한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메리에게 다가갔다. 날씨에도 굴하지 않는 아주 차분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담담히 말하던 메리는 늑대족 아이들과 그 사이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로잘린,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하나와 그 뒤에서 흐뭇하게 쳐다보는 잭을 눈에 담았다. 긴 로브는 메리의 얼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메리의 눈은 총명하고 맑게 빛이 났다.
"노는 것에는 방법이 없다. 메리야."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듯 라온은 메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약한 냉기를 메리의 주변에 씌워주었다. 그 냉기는 주변의 열기에 빠르게 달궈졌지만 메리는 한결 시원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이 놀자. 메리야. 로잘린이 재미있는 것 안다고 했다."
라온은 메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괜히 메리의 주변을 맴맴 돌았다. 아픈 메리의 몸을 배려해주는 것인지 메리를 빤히 바라보며 가지 않는다면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한껏 보인다. 메리는 가만히 라온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뜨거운 모래사장을 지나 시끌벅적한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
"ㅡ해서 하는 게임입니다."
로잘린은 이참에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는 듯 밝게 웃었다. 태양만큼 밝은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휘날려 마치 후광이 나는 듯한 연출이 일었다. 온과 홍, 라온과 늑대족 아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하겠다고 아우성쳤다. 뒤에서 가만히 보던 최한은 로잘린의 설명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구 아닌가?'
피구, 거의 모든 대한민국 학생들이 경험해본 구기 게임이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맞으면 죽는 것. 받아내거나 피하면 산다. 그렇기에 생각해 내는 것도 간단했다. 로잘린은 공이 있는 김에 재미있는 놀이나 해보자고 초급 마법 파이어를 구현해 내는 것처럼 이 게임을 고안하였다.
팀은 굉장히 빠르게 꾸며졌다. 최한과 로잘린, 온과 홍이 한편, 하나와 라크, 라온이 한편 거기에.
"그래서 왜 나도."
"인원을 생각해야죠."
케일도 한 편이었다. 로잘린은 상대편에 있는 케일을 바라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케일은 아까 까지만 해도 나른하게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주변에 텔레포트 진이 마련되었고, 자신은 그 중앙에 있었고, 삽시간에 모래사장 한복판에 떨어졌다. 인간아, 로잘린이 놀자 한다고 하면서 라온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고 늑대족 아이들의 기대감 넘치는 시선들을 마주 해야 했다.
"메리는"
"아플거에요."
"성자는"
"오빠는 약해, 그래서 뺏어"
그렇게 약하진 않다고 답하고 싶었던 잭이었지만 왜인지 저 네모난 칸 안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모를 부상에 대해 치료는 해줄 수 있다는 조건으로 그 네모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약하지 않다고 한다면,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케일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화사한 안색을 보이는 잭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레 흔들었다. 자기도 나름 약한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빠지고 싶은 마음에 손을 들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난 건지 론이 너무나 평온하게 종을 울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망할 할배. 케일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심판 역의 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공이 떠올랐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
케일은 구석에 앉아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고 싶었다. 케일 헤니투스는 처음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시발점은 하나였다. 미친 성녀는 갑자기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공을 잡은 채 심판의 빛을 뿜어내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셔서 시야가 가려진 늑대족 아이들이 무더기로 죽었다.
"이러기에요?"
"마법을 쓰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
하나에 의해 로잘린에게 직선으로 뻗어간 공은 허공에 우뚝 멈추었다. 퍽, 소리와 함께 빛이 사그라들고 검은 아우라가 뿜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최한의 손에 공이 들려있었다. 새로운 규칙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강력한 빛과 무심한 어둠, 불타오르는 불꽃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몸짓이 뒤섞였다. 더불어 안개가 깔리고 죽지는 않을 약간의 마비가 섞여 들어갔다. 반투명한 방패들이 날아다니고 모든 힘들이 네모 안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파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바닷가, 케일은 형식상 존재만 하는 네모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제게 날아오는 모래의 폭풍을 막기에 바빴다. 안 그래도 바닷가 근처에 가면 물벼락 맞는 지독한 악운을 가진 케일이었다.
“형, 우리 그만 해요.”
“그럼 로잘린 좀 말려봐.”
“언니 그때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게, 섬이었지?”
“이기고 싶은데?”
“그런데 다치고 싶지 않은데?”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싶었다. 케일은 흐릿한 눈으로 신나게 움직이며 육탄전으로 번지는 피구 비스름한 경기장에서 나왔다. 케일의 손에는 공이었던 무언가가 있었고, 그 공은 네모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젊네요. 다들.”
언제 나온 것인지, 경기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심판은 태연하게 그 폭풍 속을 바라보았다. 온의 안개로 인하여 희뿌옇게 보였지만, 이리저리 뿜어져 나오는 그 힘들의 기세로 승패를 예상할 수는 있었다.
“… 일만 안치면 좋을 텐데.”
케일은 차분히 썬 베드로 돌아갔다. 녹다 만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는 송골 맺혀 있던 이슬을 털어내었다. 덥네. 화끈하고 서늘한 기운이 넘실대는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몸을 뉘었다. 역시 휴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게 최고였다. 그러던 순간 파도가 점점 뒤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위대한 우리가 이길 거다!”
팀 게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라온이었다. 라온의 검은 마력이 넘쳐흘렀다. 분명 현재에 기쁨을 느끼고 즐기고 있을 검은 용은 허공을 활강하며 만족스레 웃었다. 그 용의 뒤에는 해안을 뒤덮을 정도의 커다란 파도가 하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와 미쳤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말했다.
-희생할건가?
짱돌이 말했다.
“…와”
케일이 감탄했고, 모든 빛과 어둠과 불과 의지가 물에 삼켜졌다. 모든 이들의 머리에 물이 끼얹어졌고, 그 중에 웃는 자는 오직 하나. 고대의 욕쟁이였다.
-역시 용, X나 쎈데?
“…허”
케일은 제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물기와 소금기에 눈을 끔뻑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홀딱 젖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케일에게 향했다. 라온은 바로 케일을 말려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이었다. 역시 바다와 자신은 상성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케일은 어두운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 집 가자.”
휴가의 마지막을 선언하였고 그 누구도 이 말에 반발하지 않았다.
져츄
@Just_chry_chry
[ 휴가와 데자뷔 ]

__________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