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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피어난 하늘 아래 빙글빙글 돌던 알록달록한 놀이기구와 간간이 울리는 어린아이 웃음소리 같은 것이 귓전을 울리고…….

 

 

엄마, 아빠, 이것 보세요!

 

 

케일 헤니투스는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사람처럼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아니, 지금 나는 케일 헤니투스가 맞는 건가? 다급히 온몸을 더듬으며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남김없이 뜯어보던 그의 시선이 돌연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선 끝에 닿은 새까만 구두코가 반질반질하니 닳아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꼭, 케일 헤니투스가 아닌,

 

 

이것은 열대어의 꿈이다.

 

 

자각하기가 무섭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인위적으로 이어 붙여진 것 같이 어색하던 색색의 장면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내며 시야가 뒤집혔다. 그 뒤로는 무채색의 향연이었다. 저보다도 한참 작아 골반까지밖에 오지 않는 검은 머리칼의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게,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온데간데없고 흉터 자국만이 낭자한 선 굵은 손가락이 나타난 게 이리도 숨 막힐 일이었던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개꿈이라고 생각하며 넘겼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열대어의 꿈. 그것은 지리멸렬한 결말을 지녔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는 더욱 괴로웠고 심연으로 침몰하는 몸뚱이를 차마 막을 수 없었다. 토막 난 숨을 들이켜면 소금기 가득한 물이 밀려 들어와 폐부를 갈기갈기 찢어대었다. 이 상태라면 열대어는 심연의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금방 죽어버릴 터.

 

 

차라리 내게 아가미가 있었더라면, 끔찍한 결말은 보지 않고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답지 않게 낭만적인 생각을 한다고 자조하며 체념한 듯 어린 소년의 잔상을 느릿하니 눈을 굴려 뒤쫓았다.

 

 

어린 소년은 한참을 하얗고 까만 놀이공원에서 부모의 손을 잡고 놀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 되어서야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자동차 맨 뒷자리에 앉히고 앞자리에 올라탔다. 집에 가는 길에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흑백의 풍경을 한참 보던 아이는 금세 지루해졌는지 하품을 비식 하다가, 차창 밖 검은 열대어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느낀 찰나에.

 

 

“아…….”

끝을 알고 있었음에도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닳아빠진 구두 밑창을 질척하게 적시는 검은 액체들이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광경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한 그의 어깨 위로 지친 기색이 몸집을 불리며 눌러 붙었다. 이제는 그만 좀 보고 싶은데. 피로감에 시큰거리며 아파오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가 천천히 숨을 고르는 사이, 검은 액체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 탐욕스레 집어삼키며 바다로, 더 깊은 밑바닥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닌가, 내가 이 바다를 붙잡고 있는 건가. 가라앉는 와중에도 그는 공허한 상념을 늘어놓았다. 토악질이 날 정도로 괴로운 이 망자의 바다, 혹은 욕심의 바다에서 뭉그러진 채 또 몇 번을 더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내게 아가미가 있었더라면.

 

 

답지 않은 낭만이어도 좋으니, 제발. 누가 나를 좀 구원해 달라고. 김록수는 죽어버린 꿈의 바다 끝자락에서 괴로움에 사무친 제 몸뚱이를 한껏 웅크렸다.

 

 

 

 

 

 

아가미 ─ 부재와 실재 사이의, ▪▪

 

 

 

 

 

 

유난히 신경질적인 상태로 잠에서 깬 케일이 다짜고짜 입을 열어 갈라진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짐 싸."

 

 

바다로 갈 거니까. 그 말에 아이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매달리기 시작했다. 바다 좋다는데! 놀러 가냐는데! 약한 인간아, 사과 파이 챙겨도 되나? 따위의 말을 신나게 노래하듯 쫑알이던 아이들이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니다 케일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라온, 영상구 좀."

 

 

그러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매달렸다. 누구 데려가냐는 건데! 약한 인간아, 누구한테 거는 건가? 어, 그거, 불쌍한 왕세자한테. 왕세자 안 바쁘냐는 건데!

 

순식간에 일국의 왕세자를 불쌍한 사람 취급한 케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뭐, 내 알 바는 아니고. 어차피 전쟁도, 전쟁 뒷처리도 끝난 참인데 그 인간도 휴가 한 번 다녀와야지. 케일이 부스스한 머리칼을 론의 손길에 맡기며 눈을 지그시 감으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레몬에이드가 이토록 시큼할 수 없어 곧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우리 로운의 자랑스러운 은빛 ㅂ─]

 

 

영상구가 연결되자마자 들리는 혀에 기름칠한 왕세자의 듣기 싫은 말에 더더욱 인상이 일그러졌고.

 

 

"아, 좀. 조용히 하시고, 짐이나 싸시죠."

 

[늘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불경하고 싸가지 없단 말이야.]

 

"불경한 김에 더 불경해야겠네요. 급한 일들도 다 끝났는데 저한테 납치 좀 당하셔야겠습니다."

 

[돌겠네, 정말.]

 

 

어이를 상실한 알베르의 웃음이 영상구에서 흘러나왔다.

 

 

“바다로.”

 

[또 무슨 일 생긴 건가, 응?]

 

 

아니 이 인간은 왜 자꾸 자신이 어디로 간다고 할 때마다 일이 있다고 확신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케일은 대번에 불경하고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이번 여름에는 휴가 좀 같이 다녀오시죠."

 

 

 

***

 

 

 

몇 년 전 정글의 여왕이 케일에게 준 선물인 정글 옆 해안가에 있는 작은 별장 하나가 오래간만에 복작복작했다. 케일 혼자만 왔다면 모를까, 케일의 귀여운 묘족 아이 둘과 어린 용 한 마리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휴가라곤 여태 단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불쌍한 왕세자 하나 더 끼얹는다면야.

 

덕분에 케일은 바다 냄새 가득한 한적한 별장에서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잠만 잘 기회를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말았다. 바다를 처음 본 것도 아니면서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물장구를 치고 놀자는 아이들과 덩달아 묘한 기대감이 어린 눈을 한 왕세자를 외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겠는데, 왜 스물 후반씩이나 되는 인간이 징그럽게 그러는 거냐며 신랄하게 혀를 놀린 케일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한 번도 휴가를 와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어, 그럼. 속으로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불경한 생각을 하며 납득한 케일은 아늑한 흔들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자, 얘들아.”

 

“‘얘들아’에 나도 포함된 것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니겠지, 케일?”

 

“잘 아시네요. 역시 영특하신 우리 전하.”

 

“휴가를 온 건지 시비가 털리러 온 건지 지금 분간이 잘 안 되는데.”

 

 

오랜만에 어린아이 모습을 한 묘족 남매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맞잡고 어깨에는 어린 용 한 마리를 매달고선 별장 문을 나서는 케일의 뒤로 알베르가 혀를 차며 뒤따랐다. 언제나 봐도 불경하기 그지없는 놈이라며 속으로 투덜대던 알베르는 문이 열리고 밖에 나서자 찬란한 햇빛에 눈이 부셔 잠시 눈가를 찌푸렸으나, 다시금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케일 헤니투스가,

 

 

찬란함 아래서 그를 돌아보고 희미하게 웃었기에.

 

 

순수한 웃음이 아닌 저를 놀리는 것에 가까운 웃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또한 케일이 왕국에서 제법 수려한 미인에 속하는 것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기습과도 같은 저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알베르는 목덜미가 조금 홧홧하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는 필히 햇볕이 뜨겁기 때문일 것이라며 알베르는 널뛰는 속을 가다듬었다.

 

제 편이라곤 하나도 없는 삭막한 왕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적인 감정을 늘 도려내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도록,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슬픔을 감추는 것을 잘 해내지 않았던가. 알베르는 산란하는 빛무리 앞에서 침음을 삼켰다. 잔잔한 수면 위로 파원을 그리는 어설픈 감정은 도대체 언제부터 방울졌던 걸까. 설익은 과실을 도려내고 말아야 함을 알면서 이다지도 망설이게 되는 것은 죄악일까. 떨리는 눈꺼풀 아래로 푸른 하늘을 모아 담은 눈동자가 슬며시 감추어졌다.

 

 

지독히도 무더운 여름인 모양이었다.

 

 

“뭐해요, 빨리 안 오고.”

 

 

저런 퉁명스런 한 마디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혀끝에 감겨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형을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지, 동생.”

 

 

그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진저리를 치는 이의 탐스럽게 붉은 머리칼이 어여삐 느껴지는 것은.

 

 

“헛소리하실 시간 있으시면 저기 바닷물에 냉수마찰이나 하세요.”

 

 

반짝이는 바다를 가리키는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모양새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대는 것은 전부, 무더운 여름의 장난질에 놀아나기 때문일 뿐이었으므로.

 

알베르는 그리 믿고 싶었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

 

 

 

***

 

 

 

분명 아이들은 케일과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케일은 내내 백사장에 우뚝 세워둔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냉침한 홍차에 들어있는 얼음을 오독오독 씹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쫓는 시선은 느긋했고, 가끔은 머나먼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음미하는 듯했다. 아주 그리운, 그러나 서글픈…….

 

 

“케일! 거기 있지 말고 우리랑 놀자는 건데!”

 

“케일이랑 놀고 싶다는 건데!”

 

“약한 인간아, 바닷물이 시원하다! 같이 놀자!”

 

 

짙은 차양이 내려앉은 암갈색 눈동자가 아이들의 명랑한 목소리에 제 빛을 찾는 것을 알베르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는지 차마 묻지는 않았지만, 알베르는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케일이 있는 곳까지 성큼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외면할 생각은 아니지, 케일?”

 

“……. 어쩔 수 없죠.”

 

 

케일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었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알알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어 보드라운 감촉을 남기고 사그라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뜻밖의 생경한 감각에 시선을 발가락 끝으로 떨구었다. 꿈에서는 늘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느리게 감겼다 뜨이는 눈꺼풀을 따라 암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가 감추어지길 수차례, 케일은 알베르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손가락에 감기는 체온이 유독 뜨거웠다. 케일은 그저 알베르가 더위를 많이 타 그런 줄로만 알고 태연히 감아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더워요, 전하.”

 

 

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리며 시선을 들기 전까지는.

 

 

“……. 여름이니까.”

낯선 표정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며 제 손을 빈틈없이 맞잡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것 치곤 보기 드물 정도로 붉은 귓바퀴며 목덜미를 어찌 모른 척할 수가 있느냔 말이다.

저건 꼭,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잖아.

 

 

케일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꼭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표정에, 케일은 차마 응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는 이런 류의 감정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온전한 사랑을 받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케일이 된 이래로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그들에게 제대로 보답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들이 자신을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도 못하는데 제대로 보답할 수 있을 리가. 케일은 심란한 마음에 미미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이미 맞잡은 손을 놓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몇 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동자를 데루룩 굴리던 케일은 체념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다. 평소처럼만 행동하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저 그냥 다시 앉으면 안 됩니까?”

 

“놀러 오자고 한 당사자가 그러면 쓰나.”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알베르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곱게 휘며 파도처럼 새하얗게 부서졌다 뭉쳐지길 반복했다.

 

 

검은 열대어의 눈에 비친 그는 눈부시게 역동하는 바다였다.

 

 

 

***

 

 

 

“록수야, 넌 일 다 끝나면 여행 어디로 가고 싶냐?”

 

“일이 끝나기는 합니까?”

 

“꿈도 희망도 없는 새끼. 가정이라도 해보라는 소리야.”

 

“……. 바다가 좋겠네요.”

 

당신들처럼 검게 죽은 바다 말고, 새하얀 포말이 부서졌다 뭉쳐지는 푸른빛 바다 말이야.

 

 

 

***

 

 

 

온몸이 요란하게 반응하는 이 감정이 한여름의 장난질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런 일회적인 변명으로 억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베르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격전을 벌이다 포기를 자처하고 탐욕스레 부푼 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도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으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상대로 품었던 감정이었으므로 빈칸에 이름을 하사하는 일은 그것을 억누르는 일보다 쉬웠다. 익숙하지만 자신과는 먼 것이라 생각했던 단어, ▪▪. 그 위로 쌓인 케케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알베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케일은 보드게임의 말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건 카드게임보다도 예측하기 힘든 도박이다. 그것도 성공 확률이 얼마 되지 않는 도박. 늘 성공만을 염두에 두고 살았던 사람이 실패와 체념을 먼저 각오하다니 우습지 않은가. 만약 제 이모가 이 꼴을 보았더라면 몇 날 며칠이고 그를 놀려먹었을 게 뻔했다.

 

여러 감상을 남기고 흩어진 먼지들이 자유로운 비행을 끝내고 바닥에 착륙했을 즈음이 되어서야 알베르는 땅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통제를 벗어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흔들리는 시선 끝에 오래도록 거들떠보지 않던 죽은 단어들의 비석에 검게 새겨진 글씨가 닿았다.

케일 나는 너를…….

 

 

가까스로 쌓아 올린 둑 위로 끈적하고도 달짝지근한 것들이 금방 넘칠 것 같았다. 단말마의 비명처럼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 사랑이란 단어를 목구멍이 터져라 눌러 담아도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만 사랑스러운 이의 사소한 태도에,

 

 

“케일, 잠시만.”

 

 

넘쳐흐르게 되어버렸으니.

 

 

케일은 알베르보다도 다섯 살이나 어렸다. 그러나 때때로 알베르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굴었으며, 눈빛 또한 갓 성인이 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절제된 표정과 절제된 감정 표현, 원숙한 생각들. 그 사이로 가끔씩 비치는 제 나이에 걸맞는, 혹은 제 나이에 비해 서투른 행동들. 알베르는 케일의 그 서툶에서 원인불명의 애수를 느꼈다.

 

 

“바짓단은 접고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알베르의 손에 이끌려 모래사장을 밟던 케일은 바닷가에 처음 온 것도 아니면서 처음 온 사람처럼 어리숙하게 굴었다. 이를테면 저기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반바지 차림도 아닌데 긴 바짓단을 접을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간다든가. 바짓단이 젖으면 나중에 나와서 춥다며 창백하게 질린 채 인상을 구길 게 뻔한데 케일은 아무 생각도 없이 무감한 표정으로 알베르의 손만 잡고 졸졸 쫓아오는 것이었다.

 

 

졸졸 쫓아오는……. 하, 돌겠네. 귀여워서 돌아버릴 것 같다.

 

 

무심결에 본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입안 살을 가득 베어 문 채로 알베르는 케일 앞에 무릎을 굽혔다. 다른 귀족들이 봤다면 일국의 왕세자가 고작 귀족 영식─ 물론 범상치 않은 영식이지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문이 한동안 사교계를 뒤흔들었겠지만 뭐 어떤가. 이곳에서 사교계로 말을 퍼 나를 사람은 한 명도 없을뿐더러 고작 짝사랑하는 이의 바짓단을 접어주기 위한 행동의 일환일 뿐인데. 열심히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속으로 정당화하며 알베르는 케일의 양쪽 바짓단을 꼼꼼히 접어 올렸다. 서류 작업만 하던 사람치고는 퍽 정교한 손놀림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빨갛게 달아오른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짓단을 올릴수록 드러나는 새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이, 발갛게 색이 올라와 도드라진 복사뼈가……. 이거 원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엄한 생각을 하다니 완전 실격 아닌가. 알베르는 눈물을 삼키고 손놀림을 미적대며 금방이라도 눈앞의 발목을 붙잡아 입술을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러더니 이제는 속으로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분명 밥 잘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고기는 종류별로 먹는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말랐지? 온갖 의문이란 의문을 던지며 미적거리던 중 꼴사납게 덜덜 떨리던 손끝이 케일의 발목을 부드럽게 스쳤다. 아, 미처 감추지 못한 감탄사가 허공을 맴돎과 동시에 알베르는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케일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을 등지고 선 붉은 머리의 청년이 입가를 손등으로 누른 채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의 것과 같은, 그런 표정 말이다. 허, 눈이 마주친 순간 얼빠진 탄식을 내뱉은 알베르는 무심코 어린 표정을 지은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케일……?”

 

“……. 조용히 해요.”

 

 

못 본 척하란 말이야. 암갈색의 눈동자가 푸른빛 시선을 질책하듯 노려보았다. 그 매서운 눈초리에 알베르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포말처럼 하얗게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

 

 

 

케일 헤니투스는 몹시도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기분에 빠졌다. 신경 쓸 시선도 없다며 스스럼없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시종이나 할 법한 짓을 하는 왕세자의 동그란 정수리를 별생각 없이 내려다보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중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보며 가소로워하던 여유로운 감상은 뜨거운 손끝이 발목을 우연히 간질이듯 스치는 순간 날아가 버리고 말았으니. 괜스레 속에서 열이 울컥 솟아 얼굴 위로 번지는 느낌이 들어 손등으로 입술 위를 꾹 눌렀다. 그 상태로 풋사랑 내나 풍기는 왕세자와 시선까지 맞추니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아, 이젠 손등까지 열에 물든 거 같은데.

 

 

이거 설마.

 

내가?

 

아니,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그래서는 안 되지.

 

내가 무슨 자격으로.

 

 

케일은 자신을 보고 웃기만 하는 알베르의 손길을 재빨리 뿌리치고 파도가 밀려오는 야트막한 물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무표정이었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하필 이럴 때 눈치도 없이 뒤따라오는 알베르가 미웠다. 달리기 시합을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며 숨통을 턱턱 조여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잖아. 내가 어떻게 당신을, 당신을…….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바닷속으로 빠져들었다. 갈기갈기 찢겨 바람에 너덜거리며 흩날리는 천 조각 같은 눈길이 꿈속 검은 바다를 더듬어 그려내며 지평선 너머까지 향했다. 정을 주었던 것들이 침잠한, 고요하기만 하던 그 바다를.

 

 

케일, 너는 그래서는 안 돼.

 

네가 어떻게 그 바다를 저버릴 생각을 하지?

 

 

“우욱…….”

 

 

꿈에서나 맡았던 검은 비린내가 훅 끼쳐 들어 다급히 입가를 틀어막으며 바다에 머리를 처박을 것처럼 허리를 구부렸다. 꼴사납게 토악질을 할 것 같았다. 다리가 하나둘 풀썩 꺾이며 시야가 뒤집히려고 할 즈음에 누군가가 그의 몸을 받치고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귀가 왱왱 울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김록수, 록수야, 록수…….

 

 

“케일!”

 

 

밀려드는 현기증에 질끈 감고 있던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니 태양보다 밝게 빛나는 금발이 눈부시게 이지러졌다.

 

 

“……알베르.”

 

 

이면에 어두운 밤을 품고 있더라도 이리 빛나는 당신을 내가 어찌 감히 그 검게 죽은 바다로 끌어들일 수 있겠어.

 

 

명멸하는 시야에 들어찬 그의 보기 드물게 일그러진 낯을 가물가물한 눈으로 살피던 케일이 그와는 정반대로 해사한 웃음을 얼굴에 덮어썼다.

 

 

당신은 나를 구원할 수 있어?

 

 

 

***

 

 

 

“김록수 이 미련한 새끼.”

 

 

와, 초장부터 욕을 하시네. 하긴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당신은. 지친 낯으로 그를 올려다보니 그가 커다란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너 이 새끼, 내가 너 이럴 줄 알고 편히 못 뒤졌지, 응?”

 

 

그의 얼굴 위로 노이즈가 번지며 이목구비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썩 좋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다는 건 번잡한 흑백의 점들 사이로도 선명히 드러났다.

 

 

“정신 차려, 미련한 놈아.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셈이야?”

 

 

그가 손을 뻗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검은 바다의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리는 손길에 버둥거리기도 잠시,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가만히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바다는 넓어. 이런 시커멓게 죽은 곳 말고 살아있는 곳도 있단 소리야 인마.”

 

 

듣기 싫었다. 귀를 막으려 다시 발버둥을 치며 팔을 움직였으나 뻣뻣하게 굳은 팔은 금세 그의 손길에 저지당했다. 말 좀 들어 새끼야!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어깨를 붙잡았다.

 

 

“너, 바다에 가보고 싶다고 그랬잖냐.”

 

 

숨이 막혔다. 조여들던 폐부가 절단된 것 같았다.

 

 

“이제 꿈에서 그만 깨어나. 내가 다 지겨워 죽겠다.”

 

 

내게 아가미가 있었더라면.

 

 

“현실로 썩 꺼져버리란 소리야. 음습한 새끼, 나가서 햇볕이나 쬐라고.”

 

 

상처 입은 지느러미에 새 살이 돋아났더라면.

 

 

“피서는 이딴 곳이 아니라 푸른 바다에서 즐기는 법이다, 골칫덩어리야.”

 

 

열대어처럼 급류를 가르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수 있을 텐데.

 

 

─……케일.

 

 

“자, 빨리 가라고. 네가 아직도 상처 입은 새끼 고라니 같은 꼬락서니인 줄 알아?”

 

 

너는 너를 좀 더 살필 필요가 있어. 비틀린 시간선 속 어느 지점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말이 온몸에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제서야 다시 시선을 내려 몸을 훑었다.

 

아가미가 없었지만, 흉터 또한 없었다.

 

지느러미는 처참히 뜯겼지만, 그를 대신해 잡아줄 손이 존재했다.

 

알베르 크로스만, 이제는 당신만이 나를…….

***

 

 

 

등이 떠밀리듯 깊은 수면에서 깨어난 케일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밀폐된 공간의 온통 캄캄한 사위에 숨이 차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꿈에서 깨면, 괜찮을 거라면서, 이 빌어처먹을─

 

 

“케일?”

 

 

기름칠해 삐걱거리는 소음 없이 매끄럽게 열린 문틈으로 빛무리와 함께 초조한 낯을 한 알베르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들어왔다. 케일이 쓰러지고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던 모양인지 만백성이 알고 있는 전형적인 크로스만 왕가의 왕세자가 아닌 흐트러진 갈색 머리를 쓸어 올리는 다크 엘프 쿼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어두운 공간 속에서 홀로 빛나는 것만 같아서, 케일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헐떡이던 숨을 골랐다.

 

한참 멀뚱히 다가오는 그를 쳐다보던 케일은 그가 침대가에 다가오자마자 평소처럼 혀에 발린 불경한 말들을 내뱉기는커녕 어리광을 부리는 행색으로 알베르를 향해 팔만 쭉 뻗었다. 그러자 알베르는 곧게 뻗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무슨 뜻인지 묻는 낯을 했다.

 

뭐야. 다른 건 귀신같이 잘 알아맞히면서 이런 것쯤은 당연히 알아채야 할 거 아니야.

 

케일은 한껏 부루퉁한 표정을 해 보이며 팔을 재차 뻗었다.

 

 

“저하가 생각하시는 게 맞을 텐데요.”

 

“지금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네.”

 

“?”

 

 

아, 표정 정말 웃기네. 피식거리며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낸 케일을 보는 알베르의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케일, 너 정말 불경해.”

 

“네, 그러니깐 빨리 안아서 밖에 별구경 시켜주세요.”

 

 

나 팔 아파. 은근슬쩍 말을 놓은 케일이 창백한 낯으로 또다시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알베르가 거절할 수 없게. 결과는 뻔하게도 알베르의 패배였다. 입버릇 같은 ‘돌겠네’를 몇 번 중얼이던 알베르가 마주 웃어 보이며 한 줌 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케일을 품에 단단히 안아 들었다. 키는 비슷해 보였는데 체격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는 걸 몸소 느끼며 케일은 알베르의 품에 파고들었다. 식은땀에 젖어 싸늘하던 몸에 온기가 돌았다. 안도의 의미가 섞인 한숨을 토해내며 케일은 알베르의 가슴팍에 고개를 기대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내는 불규칙한 소리가 듣기 좋았다.

 

 

뛰지 않는 심장들은 더 이상 그의 바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코끝에 종일 맴돌던 진득한 비린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온 생을 괴롭히던 망자의 손길에 등이 떠밀려, 그의 온 생을 구원하러 온 별의 손길에 이끌려. 그렇게 케일은 가까스로 망자들의 해협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알베르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케일은 다리를 까딱였다. 낮과는 달리 조금은 선선해진 바닷가의 공기가 움직이는 다리 사이로 감겨들었다. 그 감각이 생각보다 훨씬 간지럽고 또 기꺼워서 케일은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자박자박 모래를 밟는 소리가 잠시 우뚝 멈췄다.

 

 

“무얼 그리 웃어. 잘한 것도 없으면서.”

 

 

내리깐 고동색의 시선이 암갈색의 눈동자와 이리저리 얽혔다. 질책의 탈을 쓴 걱정 가득한 말에 케일은 대답을 미루고 눈동자를 모로 굴렸다가, 고개를 한껏 젖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은하수와 색색의 별들이 수 놓인 밤하늘은 마치 검은 바다가 출렁이며 눈부신 포말을 토해내는 것만 같았다. 꼭, 꿈에서의 그 손길처럼 느껴져서.

 

 

당신들은 죽어서도 내가 있는 세계를 쫓아다니며 나를 지켜보았구나. 내가 당신들을 놓지 못했으니.

 

 

“걱정하셨나 보네요.”

 

“그걸 말이라고 해?”

 

 

이제 당신들은 편히 눈감아도 좋아. 나 이제 괜찮아. 이제 다 놓아줄게.

 

 

“……알베르.”

 

 

피서 가기 딱 좋은 하늘빛 바다를 찾았거든.

 

 

“나를 사랑해?”

 

 

 

***

 

 

 

쏟아져 내릴 것만 같던 별들을 함빡 담은 암갈색 눈동자가 짙은 갈색빛 눈동자와 허공에서 부딪히며 녹아내렸다. 나른했던 눈매가 하늘에 높이 뜬 반달처럼 둥글게 휘어지고, 가늘고 곧게 뻗은 손가락들이 밤을 닮아 짙은 양쪽 뺨 위로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저를 사랑하느냐고.

 

 

수많은 말과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알베르의 심장을 들쑤셨다. 간혹가다 지금처럼 서럽게 웃는 낯을 내비치는 그를 보고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누구보다도 생을 갈망하면서 죽음의 냄새를 풍기던 그의 우묵히 패인 눈동자를 보고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하물며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대는 타인은 구원하면서 정작 본인은 구렁텅이에서 뒹구는데. 이리도 가련한 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며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알베르는 처음 케일을 본 순간부터 그를 향해 드리울 거미줄을 견고히 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케일을 구원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알베르뿐이었으므로.

 

 

“케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살 거야.”

 

 

휘영청 떠오른 두 개의 반달을 조금 더 가까이서 음미하고자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대었다. 설령 달의 처참한 뒤편까지 보게 되더라도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난 욕심이 아주 많지.”

 

 

코끝과 코끝이 닿으며 미온을 품은 호흡이 서로의 얼굴을 간질였다. 욕심이 많은, 그래서인지 케일 앞에만 서면 더욱 어리석어지는 왕세자가, 왕세자가 아닌 얼굴로 두 개의 반달을 오롯이 품에 끌어안아 머금었다.

 

 

“네가 무엇을 걱정하든 나는 네 걱정처럼 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이라는 소리야.”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해 결국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사는 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나는 쉽게 죽지 않아.”

 

 

그 사람이 바로 나, 알베르 크로스만이므로.

 

 

“사랑해, 케일.”

 

 

심장에 가득 품고도 숨겨두었던 밀어를 속삭인 입술이 두 번의 생을 다하도록 구원받지 못한 자의 입술에 세례를 내렸다. 신성한 의식도, 축복의 의식도 아닌 그저 지독할 뿐인 일방적 세례가 가련한 열대어의 도려낸 폐부를 이어붙이고 지느러미가 뜯겨나간 자리를 어루만졌다. 뒤엉키는 가쁜 호흡 사이로 검은 열대어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시계의 초침을 따라 천천히 꽃을 피웠다.

 

 

“……케일, 나를 사랑해?”

 

 

검은 열대어가 새 살이 돋아난 무지갯빛 지느러미로 물살을 갈랐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

 

 

그토록 바라고 또 바라던, 이제 막 싹튼 아가미로 떨리는 첫 숨을 내쉬며.

 

 

“사랑해, 알베르.”

 

 

당신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바다이며 구원이노라고.

 

미미

@m1m1luv_AG

[ 아가미 - 부재와 실재 사이의, ■■ ]

__________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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